증우인(贈友人)
술병 속의 세월은 차고 기울지 않았지만
속세의 청춘은 젊음도 잠시일세
후일 상제께로 돌아가거든
옥황 앞에 맹세하고 그대와 살리라
매창(梅窓ㆍ1513~1550)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 시인으로 평가받는 매창은
1573년(선조 6년) 부안현의 아전이던 이탕종(李湯從)의 서녀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해가 계유년이었기에 계생(癸生)또는 계랑(癸娘)이라 하였으며
향금(香今)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계생은 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웠으며, 시문과 거문고를 익히며 기생이 되었다
기생이 되어 그는 천향(天香)이라는 자(字)와 매창(梅窓)이라는 호(號)를 갖게 되었다
조선시대 여성들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당호(堂號)를 가진 귀족 여성 이름만 있는 기생들이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이름 자 호까지 지니며 살았던 것이다.
기생으로서는 이미 늙은 나이인 28세에 매창은 허균(許筠)을 만났다
허균은 전국 방방곡곡을 기생들과 함께 돌아다니는 난봉꾼이었지만
매창의 한시와 노래 거문고에 반해 10년 동안 정신적인 교분을 나눴다.
허균은 다음과 같이 매창을 보았다.
계생은 부안의 창녀라. 시에 밝고 글을 알고 노래와 거문고를 잘 한다.
그러나 절개가 굳어서 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그 재주를 사랑하고 정의가 막역하여 농을 할 정도로
서로 터놓고 얘기도 하지만 지나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오래도록 우정이 가시지 아니하였다
상제문화는 한민족 고유의 핵심 문화입니다
대진국(발해)이 멸망한 이후로 신교의 이념이 쇠퇴되면서 외래종교가
우리 민족의 정신속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한민족 정서에 그대로 담겨있는 이 상제문화를 복원할때
진정한 역사가 복원이 될것입니다
출처-한의 뿌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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