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

고구려와 터키(돌궐)

평창군 대하리 2007. 5. 31. 19:37

 

삼국사기 고구려 영양왕 18년(607)조에는

일찍이 수(隋) 양제(煬帝)가 계민(啓民)의 장막에 행차했을 때

 

고구려 사신이 계민의 처소에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계민은 돌궐(突厥)의 계민 가한(可汗·황제)을 뜻하는데

 

돌궐은 투르크의 음역(音譯)으로서 현재 터키의 전신이다

 

따라서 이는 수 양제가 북방 투르크 제국을 방문했더니

때마침 고구려 사신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내용은 수서(隋書)양제 본기(本紀) 대업(大業) 3년(607) 조에도

실려 있는 사실이다

 

이때 양제는 고구려 사신에게 돌아가 네 왕에게 마땅히 빨리 와서

조현(朝見)하도록 하라며 그러지 않으면 계민과 함께 공격하겠다고 협박한다

 

양제는 고구려와 투르크의 통교(通交)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고구려와 투르크는 한때 거란과 말갈 등의 지배권을 두고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하자

 

동맹 관계를 맺어 공동 대응했던 것이다

 

영양왕은 재위 9년(598) 말갈(靺鞨)군사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요서(遼西)를 선제공격하고, 양제의 부친 문제(文帝)의 30만 대군을

전멸시킨 장본인이므로 양제의 입조(入朝) 요구는 허세였다

양제는 몇 년 후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되레 왕조가 망하고 말았다

투르크는 13세기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는데

현재 터키의 국사 교과서는

고구려를 투르크의 형제국이라고 설명한다고 한다

 

작성자 이덕일

 

출처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2006093000498&FV=고구려&searchPage=simple&collectionName=gisa&INDEX_FV=&INDEX_FV=TI&INDEX_FV=TX&INDEX_FV=KW&AU_FV=&PD_TYPE=true&PD_F0=year&PD_F1=&PD_OP=1&PD_F2=&DATA_SORT=4&LIMIT=20&LIST_TYPE=true&PP_F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