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인
최고의 명리대가 제산(霽山) 박재현(朴宰顯, 1935~2000)
경남 함양군 서상면의 극락산 자락에 맺혀 있는
을해명당(乙亥明堂)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제산은 과연 비범했다.
몸도 약하고 성격도 내성적이고 얌전해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아이로 보였지만, IQ만큼은 대단했다.
‘서상에 신동 났다’는 소문은 헛소문이 아니었다.
제산의 유년시절 이름은 광태(光泰)였다.
광태는 어렸을 때부터 ‘일람첩기(一覽輒記)’였다.
한번 죽 훑어보고 단박에 암기하는 능력을 가리켜 일람첩기라고 한다.
말하자면 인간 스캐너(scanner)인 셈이다.
제산은 서상초등학교를 마치고 진주농림중학교에 진학하였다.
진주농림은 당시 5년제였는데, 제산은 공부를 잘해서 장학생으로 뽑혔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제산으로 하여금 조용히 공부나 하게 놔두지 않았다. 중
2때 6·25가 터진 것이다. 피난을 가야 했다.
부랴부랴 진주에서 고향인 서상으로 올라오기 위해 목탄으로 불을 지펴 움직이는 목탄차를 탔다.
서상으로 오던 도중 이 목탄차가 비행기 폭격을 피하려다 비탈길에서 그만 엎어져 버렸다.
그 바람에 제산은 다리가 부러졌고,
전쟁 와중에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한 제산은 그만 앉은뱅이가 돼 버렸다. 3
년 동안 집에서 앉은뱅이로 있던 제산은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집에서 놀아야만 했다.
그후 물리치료를 받아 겨우 몸이 회복되었을 때는 동년배 또래들과 많은 격차가 나 있었다.
집안의 다른 사촌들은 정상적인 과정을 마치고 이미 서울의 명문대학에 다니고 있던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광태(제산)는 시골의 거창농고에 다녔다.
거창농고 재학시절 제산과 같은 하숙방을 썼던 동기는 다음과 같은 술회를 남겼다.
하숙방에서 친구가 시험공부를 하고 있으면, 제산은 방에 누워 친구가 책 읽는 소리를 들었다.
제산은 몸이 약해 오랜 시간 앉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산은 친구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모조리 암기해 버렸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친구는 70점을 받은 데 비해 누워 있던 제산은 만점을 받는
희극이 연출되었을 정도로 머리가 비상하였다.
하지만 제산은 세속적인 학문에는 관심이 없었다.
머리 좋은 천재가 낭인과로 들어가면 관심 갖는 분야가 바로 도통(道通)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하여 나는 왜 이런 팔자인가 라는 의문을 거쳐
이 세상과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가 도대체 무엇인가에까지 이른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도를 통하고 싶은 대원(大願)이라고나 할까.
청년 제산은 ‘그것이 알고 싶다’는 불타는 욕망을 가지고
지리산 일대의 도인들을 만나러 다녔다.
이 시절 청년 제산의 모습은 거렁뱅이에 가까웠다.
춥고 배고프고 노잣돈도 떨어진 상황이었다.
완전히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외로운 구도자의 길을 걸었다.
제산은 지리산 둘레의 산청·함양·운봉·구례 등지를 방랑하면서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숨어 사는 수많은 기인·달사들과 교류를 가졌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유교·불교·도교를 섭렵하게 되었다.
유교의 사서삼경과 불교의 ‘금강경’ ‘화엄경’ ‘능엄경’을 비롯한 제반 불경,
도교의 벽곡(酸穀)·도인(導引)을 비롯한 호흡법과 ‘성명규지’(性命圭旨) 같은 비서(秘書)들을 접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말로만 듣던 천문·지리·인사로 통칭되는 재야의 학문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된다.
이러한 기인·달사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제산은 어느새 영기(靈氣)가 개발되었던 것 같다.
대체로 머리 좋은 사람들은 영기(靈氣), 즉 직관력이 부족한 수가 많다. 분석적이기 때문이다.
매사를 하나 하나 논리적으로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영기가 쇠퇴한다.
마치 모래시계의 양면과 같아서 논리가 강하면 반대쪽 사이드인 직관쪽 기능은 퇴화되게 마련이다.
1996년 4월 하순경. 필자는 함양군 서상면 옥산부락에 있는 덕운정사(德雲精舍)를 방문하였다.덕운정사는 제산의 탄생지에 자신이 직접 세운 도관(道館)이자 집이고 아카데미였다.
대지 2,000평에 50여칸에 달하는 전통 기와집 형태다.
제산이 도회지에서 은퇴하여 말년에 이곳에서 제자도 키우고
자신의 못다한 정신수양도 하려고 지은 건물이었다.
제산은 관상부터가 비범하였다.
보통 사람이 제산의 관상을 보면 별로 잘생긴 얼굴은 아니라고 보지만,
관상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 보면,
제산의 얼굴은 원숭이형의 관상이다.
원숭이 형의 얼굴을 가진 사람 중에서 천재가 많다.
원숭이는 손오공을 연상시키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도올도 원숭이 관상이다.
일본의 원숭이 천재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검정 사인펜으로 써 놓은 책 제목은 ‘성명규지’(性命圭旨)였다.
필자는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다시 한번 놀랐다.
‘성명규지’는 중국 명대(明代)의 내단서(內丹書)로서
유·불·선(儒佛仙) 삼교합일(三敎合一)의 입장에서 성명쌍수(性命雙修)를 강조하는 일급 비서다.
‘성명규지’에서 강조하는 성명쌍수는 성(性)과 명(命)을 모두 닦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은 불교의 주특기로 자기의 마음을 관찰하는 방법이고,
명은 도교의 주특기로 호흡법을 통하여 몸을 강철같이 단련하는 방법이다.
성만 닦고 명을 닦지 않으면 지혜는 밝지만 몸이 아프고 신통력이 나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명만 닦고 성을 닦지 않으면 몸은 건강하고 장수할지 몰라도
긍극적인 지혜(ultimate wisdom)는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선불교의 장점과 도교 수련의 장점을 모두 겸비해야만 진정한 도인이 된다는 입장이 성명쌍수요, ‘성명규지’의 주장이다. 말하자면 도교와 불교의 장점을 모두 아우르자는 이야기이다.
제산이 이 책을 꺼낸 의도는 불교수행만 수행이 아니고 도교 수행도 해야 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도불(道佛)수행을 아우르는 비전(秘傳)의 도서(道書)를 하나 소개해 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 일을 계기로 제산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바뀌었다.
사주팔자나 보아주는 단순한 술객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선맥(仙脈)에 어떤 형태로든 맥을 댄 도가의 인물이구나 하는 판단이 들었다.
최고의 명리대가 박도사가 20세기를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가공할 신통력의 근원을 추적해 들어가면 결국 주문(呪文)이 나온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을해명당’(乙亥明堂)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고,
학교 다닐 때도 머리가 비상했으며,
지리산 일대를 방랑하면서 많은 도사들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역시 신통력의 핵심에는 주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주문이란 무엇인가. 주문의 본질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한 결과
주문이란 결국 ‘신들을 설득하는 소리’라는 결론을 얻었다.
소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sound is power). 그래서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다.
누구를 저주(詛呪)한다고 할 때 주문의 주(呪)자가 들어가는 것도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특정한 소리를 계속 반복하면 그 소리와 감응하는 신들의 세계가 있고,
이 신들의 세계에서 그 사람에게 힘을 준다.
고금을 막론하고 정신세계와 접속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소리였고,
그 소리는 주문이라는 형태로 패턴화 되었다.
따라서 주문은 가장 강력한 영적 파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주문은 기도나 참선보다 효과가 빠르고 굉장한 파워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우주에는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처럼 무수한 하늘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예를 들어 구한말 김제 모악산(母岳山)에서 수행하였던
강증산의 주문은 ‘훔치 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라는 ‘태을주’(太乙呪)'였다. 태을주는 뿌리를 찾는 주문이라고 한다.
태을주의 '태을천 상원군'은 모든 신선과 부처를 만들어내는 신선과 부처의 조상이라고 전해진다.
기독교인들이 예배할 때 외우는 ‘주기도문’도 필자가 보기에는 주문의 일종이다.
그런가 하면 ‘옴-마-니-반-메-훔’의 여섯글자가 전부인 육자대명진언(六字大明眞言)도
유명한 주문으로, 산동네인 티베트에서 발효된 특유의 영성이 물씬 풍기는 주문이다.
우리나라의 역대 유명한 장군들도 주문수행을 통해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진다.
을지문덕·강감찬·임경업 장군이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한다.
사명대사가 외웠던 주문의 이름은 ‘섭화차’(攝化借)였다.
주문의 존재를 모르는 사주쟁이들은 박 도사의 초능력이 오직 책만 보고 얻은 능력인 줄로 착각한다.
필자도 그의 제자인 청잠으로부터 구령주라는 이야기만 들었지
구령주를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에 의해 암송해야 하는지는 듣지 못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사주는 이론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영발(靈發)이 있어야 한다.
-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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