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국은 한자를 사용하면서 한글의 원형이 된 가림다(加臨多)라는
독자적인 문자를 만들어 혼용했다.
특히 발해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고 34차례에 걸쳐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며 외교활동에도 주력했다.
이 때문에 당나라 이백의 시문집 '옥진총담(玉塵叢談)'에서
이백은 발해를 고려(고구려)나 백제로 부르며
한민족의 독자적인 국가임을 인정했다.
이백은 말갈어에 정통해 발해와 중국 간 외교문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이백의 혁만서(蠻書)에도 당시 당나라 사람들이
발해를 고려나 백제로 불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우리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해 고구려 계승 유물로 확인 (0) | 2007.05.31 |
---|---|
발해화폐 추정 금화 뒷면의 의미는 (0) | 2007.05.31 |
고구려와 백제성의 비밀 (0) | 2007.05.31 |
최치원 발해(대진국)는 고구려 계보다 (0) | 2007.05.31 |
중국은 고구려는 외국 으로 간주 했다 (0) | 2007.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