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이 답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IMAGE|a0100955_496596bc320a7.jpg|pds/200901/08/55/|mid|244|300|pds11#]
이곳은 은허(殷墟) 유적보다 이른 시기의 상(商)나라 성이 존재했던 곳인데요.
이것이 이번에 새롭게 확인한 원북상성의 북성벽입니다.
" 따끈따근한 발굴 성과를 보면서 유난히 감상에 젖는 이들이 있었다.
(梁思永) 등의 후손들이었다.
99년 전인 1899년 국자감 좨주이자 금석학자였던 왕이룽(王懿榮)은 지독한 학질에 걸렸다.
바로 허난성(河南省) 안양(安陽) 샤오둔춘(小屯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928년 둥쭤빈을 대장으로 대대적인 샤오둔촌 발굴에 나섰고,
으로 등재되었다.
"특히 1936년에는 12기의 왕릉과 2500여기의 제사갱, 부장묘가 발굴됐는데
즉 역사서에 나온 반경에서 주왕까지 12명의 왕으로 해석했어요.
"(이형구 선문대 교수) 답사단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갑골전시관이었다.
1936년 이 한 곳(YH 127 갑골갱)에서만 무려 1만7000여편의 갑골이 쏟아졌다.
문득 '상서(尙書) 다사(多士)'편에 나온 "오직 은(상)의 선인들만이 전(典)이 있고,
지금의 국가기록원인 셈이다. 은(상)은 갑골에 하늘신과 조상신,
자연의 신령에게 왕실과 나라의 길흉을 점친 것으로 유명하다.
아직 해독된 글자는 1000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답사 내내 경탄에 마지 않은 것은 은(상)의 청동기와 옥기 제작 기술이었다.
중국 동북방 차하이-싱룽와에서 발원한 옥기문화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문제는 은(상)은 동이족의 일파라는 점이다.
문물연구소 연구원)"이라 해석되고 있다.
이형구 교수는 "고구려·백제의 선조인 부여 역시 점을 치고, 술과 노래를 좋아하며,
"하늘로부터 왕권을 받았다는 뜻인 역법(曆法)마저 은의 역법을 썼다"고 말했다.
이제 짙게 깔린 어둠에 바람마저 휑하여 더욱 쓸쓸해진 은허 현장.
그 동이의 역사는 300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현현하고 있으니까….
< 중국 안양(은허) |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 경향신문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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