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삼국지와 고구려

평창군 대하리 2009. 2. 16. 15:17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 많은 영웅호걸 중 단연 손 꼽히는 인물은 ‘제갈공명’이다
제갈공명은 제 나라가 50년 후에 망한다’는 사실도 예언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의 무학대사와 도선국사는 고려의 500년 조선의 500년을 정확하게 예언했다.

 

중국 삼국지’에서 ‘제갈’이나 ‘사마의(司馬懿)’의 뛰어난 활약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춘추필법'으로 병들게 했는데

과연 그 시점의 고구려는 어떠했을까?


제갈공명이 위나라의 사마의에 의해 처참한 패배 끝에 결국 생을 마감하고,

사마의는 서안평의 전투에서 고구려의 국상 ‘명림어수’의 치밀한 전략에 참담한 패배를 당한다.


사실 적벽대전의 현장을 가보면 100만 대군이 치열한 전투를 한 곳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협소한 공간이다. 즉, 100만이라는 숫자는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언제나 밝혀지기 마련이다. ‘삼고초려’도 나관중의 머리에서 나온 허구다.


제갈공명이 사마의와의 전투에서 처참한 패배를 당하면서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된 후의 일이다.

위나라에 반기를 든 공손연을 토벌하기 위해 고구려에게 도움을 청했고,

동천왕은 흔쾌히 군을 출동시킨다.

위나라 군에 쫓기는 반란군을 가볍게 물리친 고구려 군은 쉽게 서안평을 점령했다.

서안평에 주둔한 고구려군은 토벌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군사를 물리지 않았다.

이에 사마의는 환도성으로 사신을 보내 군사를 물릴 것을 요구했지만,

동천왕은 차일피일 미룬다.

그 와중에 위나라의 명제가 세상을 뜨고 변경에 신경을 쓸 여지가 없는 틈을 타서,

동천왕은 드디어 서안평을 고구려 영토로 선포하기 이른다.

이에 놀란 ‘사마의’는 조카 ‘사마강’으로 하여금 고구려 정벌군을 출동시키며,

세세하면서도 치밀한 전략을 하달하지만,

사마의 전술과 전략을 간파한 ‘고구려의 국상 명림어수’에 처참한 참패를 당하고야 만다.


즉, 삼국지는 중국의 역사는 알아도 우리 역사를 모르게 만들었고,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뿌리깊이 심어주게 만든 일등공신(?)인 것이다.


위·촉·오는 창업에서 패망에 이르기까지 60년도 안 되는 역사의 나라다.

세 나라 간에 온통 속이고 속이는 추악한 권모술수로 점철된 역사를

어떻게 당당하게 정도를 걸어온

천년에 가까운 고구려의 역사와 비교를 하는지 반문하고 싶다?

중국 역사상 최강의 국가라 할 수 있는 당나라도

고구려 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초로 한다면,

 

중국의 삼국 위·촉·오 모두 협공을 해 고구려를 침공한다고 해도

당시 국력과 통치 시스템을 고려해도 능히 고구려는 막아 냈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삼국시대의 영웅호걸들이 과연 중국 삼국시대 장수들에 비해

아직도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지 묻고 싶다.


장병영 민족혼 되찾기 대표

 

중간 생략글 입니다

원문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articleid=20081103153907591f0&newssetid=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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