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탄허스님 예언

평창군 대하리 2011. 3. 27. 20:07

김탄허스님(1913-1983)의 예언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탄허스님의 예언은 한반도 주변과 지구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어 주목을 받아왔다

탄허스님은 불교와 동양사상을 습득한 선사로서 생존시 깜짝놀랄만한 예언을 남겼다

탄허스님이 재세시 남긴 주요예언은 다음과 같다.

 

1.간방에 간도수가 접합됨으로써 이제 한국에 어두운 역사는 끝맺게 되었다.

  인류 역사의 시종이 이땅 한국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2.소녀인 미국은 부인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도움은 마치 아내가 남편을  내조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 결과는 남편의 성공을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한다.

 

3 지금은 결실의 시대다. 열매를 맺으려면 꽃잎이 져야 한다. 꽃잎이 지려면 금풍이 불어와야 한다.

  그 금풍이란 서방 바람(미국)을 의미한다.

 

4. 현재의 중국 영토로 되어 있는 만주와 요동반도의 일부가

    장차 우리의 영토로 다시 복귀하게 될 것이다.

 

5.일본 열도의 3분의 2 가량이 바다 속에 빠져서 침몰할 것이다

 

6.한반도의 동해안도 해일과 지진으로 침몰하고 그 대신 서해안이 한반도 2배로 융기된다.


7.지구가 23도 7분 삐뚤어져 있다.

  북빙하가 녹아 내려 미국의 서부해안과 일본 열도가 침몰할 것이다.

  이에 따라 지구는 생태계 변화가 다가오고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8. 지진에 의한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핵폭발 등이 일어나

   핵보유국들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9.인류의 운명에 비극이 다가오고 있다. 인류의 60-70%가 소멸된다.

  그러나 육지의 면적이 더 넓어져 생존하는 인류가 더 윤택하게 살게 될 것이다.

 

10.오래지 않아 한반도는 국운이 융성해질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인물들이 나타나서 조국을 통일하고 평화로운 국가를 건설할 것이다.

 

탄허스님은 태평양 속의 "불기운이 북극으로 치솟아 북빙양을 녹인다"는

이른바 '정역 8괘'에 의한 '2천 7지'의 원리에서 이미 '역학'으로 근거 있는 풀이를 했다.

더구나 '묵자'의 학설을 소화시켜서 "지구가 23도 7분이 기울어진 즉 윤도수(閏度數) 때문에

결국 후천개벽(後天開闢)"이 온다는 조리를 입증한 바 있다.


물론 이때는 지진과 괴질 및 병마와 비뚤어진 인간성들이

지구가 360도로 올바르게 일어설 때,

인간도 참된 인간만이 남게되기 때문에

결국 왕도정치(王道政治)와 권능(權能)의 종교 및 권능의 지도자(指導者)가

드디어 동방에서 나온다고 말하였다.

특히 '한반도의 서해안은 융기하고'

반면, '동해와 일본열도는 바다 밑에 침몰'한다고 예언했다

(일본은 손방위로 손은 入으로 풀이 하는데

들어간다 즉 가라 앉는다는 뜻이다

에드가 케이시도 똑같은 예언을 했음)

.

 

자신 입적날 맞춘 탄허스님

이런 예언을 남겼던 탄허스님은 자신이 죽을 날짜와 시간까지도 예언했는데

그 시간이 정확하게 적중되었다.

1983년 6월 5일 유시(酉時)인 오후 6시 15분에 "김탄허 대선사"는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 그의 처소에서 그가 입적했다.

그 자신이 예언했던 죽음의 시간에 열반한 것이다.

입산한 때부터 열반할 때까지의 법랍은 49년째 였다.

 

탄허스님은 1913년 3월 7일 전북 김제 만경에서 유학자 이었던 '김율제'선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3세까지는 부친이 종사하고 계시던 정읍의 증산교의 일파인

차천자교(車天子敎)에 있는 서당에서 한문과 서예를 배웠다.

 

뜻한 바 있어 득도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14세때 충청도 기호학파의 최대 유학자인

면암 최익현의 문하 이극종 선생에게 유교의 학문을 배웠다.

 

다시 18세때 부터 서신을 통하여 가르침을 꾸준히 받아온 오대산으로 방한암 대선사를 찾아 가게 되며,

유발승으로 그곳 상원사에 책보따리를 싸들고 학문하러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는 한암 선사처럼 '참선'도 흉내 내어 보았으나 만족할 수 없었다.

새벽 2시면 언제나 일어나서 반드시 '참선'을 하고 '경전'을 읽었다.

그의 수도하는 자세는 한치의 거름도 없이 입적할 때 까지 무려 49년간 계속되었다.

 

결국, 어느날 갑자기 그는 '한암 선사'에게 정식으로 승려가 되겠다고 삭발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22세의 야심만만했던 이 청년은 속세에 자식과 부인을 버리고, 속세와의 모든 인연을 끊은 채로

'탄허(呑虛)' 즉 "삼킬 탄(呑), 헛칠 허(虛)"라는 법명으로 드디어 '허공을 삼키기' 시작했다.

 

완전한 승려가 된 그는 3년을 '묵언과 참선'으로 지난 후 '서장(書狀)'을 다시 읽어 보니까

비로소 글자 위로 뜻이 살아 나와 영롱한 오색 무지개를 발하는것 같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다시 14년 동안 두문불출 '한암 선사' 한테 매달려

불교의 방대한 경전들을 섭렵하기에 이른다.

실은 '참선'을 바랐으나 '한암 선사' 께서 선(禪) 보다는 경(經)을 택하라는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禪)은 앉아서도 할수 있지만,

이력이 붙으면 일어서서 할 수도 있고 걸어다니면서도 쉽게 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있는 자는 경(經)을 배워 중생에게 이익을 주도록 해야

이 세상 업보도 갚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한암 선사'는 강권하였다.

 

그는 불경(佛經)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현토(懸吐)와 역주(譯註)를 달아 역경사업을 통한

불경의 한국화 및 현대화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로서 총 78권의 경전을 국역하여 바르게 누구나 배울 수 있도록 상세하게 정리했다.

 

출처 자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