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관운장(관우운장)의 삼보 조선

평창군 대하리 2007. 5. 17. 18:01

관운장(關雲長)은 병마대권(兵馬大權)을 맡아 성제군(聖帝君)의

열(列)에 서게 되었나니 운장이 오늘과 같이 된 것은 재주와 지략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의리 때문이니라. 천지간에 의로움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은 없느니라.
하늘이 하지 못할 바가 없지마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게만은 못 하는 바가 있느니라.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천지의 모든 보배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의로움을 가장 으뜸가는 보배로 삼느니라.

나는 추상 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道典 4편 15장)

 

때는 선조대왕 25년 어는 봄날이다.
선조대왕께서는 촌곤을 못이겨 깊은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산에 위퐁이 당당한 한 장군이 적토마를 타고

청룡도를 들고 삼각수를 날리며 늠름하게 대궐 안으로 들어와서

선조대왕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아우님 그간 별고 없으신지?

나는 삼국시대 관우인데 우리들의 의리와 인정을 잊지는 않았겠지?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 말일세.
우리 3형제는 살아서는 합심협력하고 서로를 도왔고 특히 형님(유비)이 촉한의 왕이 되자 나(관우) 와 동생(장비)는 촉한에 충성을 바치고
마침내 순국하지 않았는가?

우리 삼형제는 한 세대가 끝나고 영혼의 세계에서도 그 의를 지겨왔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형님은 명나라의 신종황제가 되고
나는 전쟁에서 인명을 너무 많이 해쳐서 인간 환생이 안 되었고
아우는 현재 조선왕이 돠었지

머지않아 동생의 나라에는 큰 병란이 일어날텐데 아무 방비도 없이

나날이 보내는 동생이 딱해서 지금 내가 일깨워 주러 왔네.
이 난리는 표독한 왜적이 쳐들어오는 난리인데

7 ~ 8년이나 걸릴테니 명나라 신종황제(유비)에게 구원을 청해서

수습하도록 하게 내가 신종황제에게 도원의 고사를 들어 간곡히

부탁할테니 주저말고 시행하게
하고 선연히 사라졌다. 깨고 보니 이상한 꿈이었다

 

마침내 임진왜란 때 관운장이 현몽한데로

선조 25년 4월 왜군 15만이 부산에 상륙하여 쳐들어오니

이것이 임진왜란인 것이다.

막아낼 재주가 없는 선조대왕은 서울을 비우고 의주로 피난을 가니

삼천리 강산은 초토화가 되고 피가 흘러 강이 되었다.


선조대왕께서는 의주에서  명나라
신종황제에게 사신을 보내어

원병을 청하였다. 그 요청이 간곡해서인지

관우의 신종황제에 대한 현몽에 감동해서인지

신종황제는 이여송(李如松)을 총수로하여 5만의 군사를 파병하였는데

마침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과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전쟁은 가짜스로

끝이 났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관제묘를 건립하였는데 명나라 신종황제는 사신을

보내어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그래서 임진왜란이후에 수많은 관왕묘에 이땅에 세워지게 되었고

극진한 대접과 공경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