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

삼족오의 유래와 흉조 까마귀

평창군 대하리 2007. 5. 23. 00:32

 

 

삼족오라는 명칭이 온전히 등장한 것은 전한시대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춘추원명포라는 책이라고 하는데 책은 전해지지 않고

그 내용만 다른 책에서 옮겨 전하고 있다

삼족오의 다리가 3개인 것은 양수가 1에서 시작돼 3에서 완성되기 때문에

태양 속에 삼족오가 있다는 해석이다

 

회남자(淮南子 BC 202)에
일중유오위삼족오야(日中有烏謂三足烏也
해 가운데 까마귀가 있으니 세 발 달린 까마귀이다)라고 되어있다

 

 

후예라는 활의 명인이 하늘을 다스리는 천제의 명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와

하늘에 나타난 10개의 태양 가운데 9개를 명중시켜 떨어뜨렸는데

그 자리에 까마귀가 죽어 있었다는 내용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청되는 후예사일)


우리나라 일부 재야 사학가들은 삼신사상

즉 천(天), 지(地), 인(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단군왕검시대의 제기로 사용된 삼족정(三足鼎)과 연관시켜

세발이 하늘의 사자 군왕, 천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까마귀는 언제 흉조가 되었을까?

 

고구려에 완패한 수·한나라가 고구려군의 상징인 삼족오를 폄하했다는 설과 

일제가 의도적으로 까마귀를 흉조라고 퍼뜨렸다는 설 

 

주자가 까마귀를 불길하게 기록한후

(주자는 송(宋 960)나라 사람으로 이웃한 북방민족(금.원나라)이

그의 조국을 지속적으로 침략해 왔다

시경  패풍의 북풍에 나오는 까마귀를 불길한 새

흉조로 주석을 달아 놓은것입니다)

 조선시대 사대주의 때문에 생겼다는 설

 

어느게 진실인지는 알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