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번째, 몽골반점이다. 프랑스 등 서유럽에 살고 있는 훈족의 후예들에게서
몽골반점이 발견되고 있다. 몽골반점이 한민족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은 아니지만
훈족 후예들이 몽골반점을 갖고 태어난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한민족과 훈족은 친척의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 두 번째, 훈족은 그들 특유의 활(예맥각궁)을 사용했다
이 특이한 활은 만드는 데만 5년, 제대로 쏘기 위해 활을 익히는 데만 10년이 걸리지만
1분 안에 15발 이상 쏠 수 있다고 알려진 활이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인 아퀼레이아에 자리한 크리프다 아프레시 교회의
프레스코화가 훈족이 이 특이한 활을 사용했음을 말해준다
이 그림에는 말을 탄 훈족이 추격해오는 로마 기병을 향해 활을 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나오는, 말을 탄 채 활로 동물을 사냥하는
고구려 무사들과 똑같다. 고분벽화에 나오는 화살촉은 도끼날 화살촉인데
이 화살촉은 날아가면서 회전하기 때문에 목표물에 꽂히는 순간의 충격이 매우 크다
훈족도 바로 이 도끼날 화살촉을 사용했다.
3. 세 번째, ‘편두’ 풍습이다
편두라는 것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를 반듯이 눕혀 놓은 상태에서
이마를 돌 같은 것으로 눌러 이마와 뒷머리를 평평하게 하는 대신
정수리를 봉긋 솟아오르게 만든 머리 형태이다
일종의 성형수술이라고 볼 수 있다. 훈족의 뼈를 보면 이마와 뒷머리는 눌려있고
정수리는 툭 튀어 올라와 있다
그런데 가야국이 있었던 경남 김해에서도 편두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법흥왕 등 신라의 왕들도 편두였다고 한다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서도 ‘진한 사람은 모두 편두’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편두는 중국과는 구별되는, 꽤 오랫동안 한민족 사이에서 내려온 풍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 한 가지는
훈족에게는 편두 풍습이 있었지만 흉노에게는 그 풍습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훈족은 편두 습속을 가지고 있는 특수 민족으로,
한반도 남부의 가야와 신라 지역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네 번째, 한편 훈족의 이동경로에서는 독특한 화분 모양의 브론즈 냄비(동분(銅盆))가 발견된다.
유목 부족장들에게 바쳐진 이 냄비는 정화의식에서 고기를 제물로 바칠 때 쓰였다.
이러한 브론즈 냄비는 가야시대 고분인 경남 김해의 대성동과 양동리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브론즈 냄비는 가야국 등의 원류가 북방의 기마민족이라는 증거로 자주 거론되어 왔다.
훈족은 동복을 말 잔등에 싣고 다녔는데
경주시 노동동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상(국보 91호) 토기에도
말 잔등에 브론즈 냄비를 싣고 다니는 모습이 발견된다.
게다가 이 기마인물상의 주인공들도 모두 편두이다
5. 다섯 번째, 훈족의 브론즈 냄비 등에서 발견되는 문양은
한민족의 금관 등 머리 장식 양식과 유사하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금관에는 나무형상(출(出)자형 장식)과 녹각형상(사슴뿔 장식)이 많다
이는 북방 민족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풍습으로
북방민족이 한반도로 이동해 정착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6. 여섯 번째, 북방 유목민족의 전형적인 습속인 순장 또한 가야 지역의 고분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특히 금관가야 유적인 대성동 고분군 1호분에선
소와 말의 머리를 베어 곽 위에 얹어놓은 목곽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훈족을 포함한 북방 유목민족의 동물 희생 행위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7. 일곱 번째, 훈족이 나무에 빨간 헝겊을 달아
악귀가 접근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원했다는 기록과
곰을 평화의 토템으로 숭배했다는 점은 우리 민족이 마을 어귀에
장승이나 솟대를 세워 염원을 빌고 곰을 토템으로 삼은 점과 매우 유사하다.
대다수 유목민족들은 곰이 아닌 다른 동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