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영혼

머리카락으로 남편 짚신 삼은 원이 엄마와 편지

평창군 대하리 2009. 1. 9. 20:14

 

 

육척 장신의 건장한 체격에 턱수염이 단정한 준수한 얼굴을 가진 젊은이는
입을 꽉 다문 채로 말없이 누워 있었다. 그의 나이는 서른 한 살이었다.
그에게는 예쁜 아내와 귀여운 아들이 있었고 아내의 뱃속에는 또 하나의 아기가 들어 있었다.
건장하던 젊은이는 갑자기 병이 들었고 얼마를 병석에 누어 있었던 듯 하다.
아내는 남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늘 천지신명께 기도하고 자기의 머리를 잘라 신을 삼았다.
그러나 젊은이는 그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내는 천천히 붓을 움직여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미이라에 가까운 시신 출토

안동에서는 세도께나 부렸던 그의 집안이었지만 그 힘든 전쟁기간에 무사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어린 자식들과 늙은 부모를 모신 그의 젊은 아내가 당했을 고초야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좀 넘어 그의 아버지는 여든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의 형도 또한 아흔 두 살까지 살다가 죽었다. 그들은 아직은 청년이라 할 나이에
세상을 등진 그의 몫까지 살았는지 당시로서는 드물게 장수한 셈이었다.
그의 젊은 아내는 언제 죽었을까? 우리는 안타깝게도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그의 이름은 이응태(李應台)이고 관향은 고성(固城)이다.
아버지 이름은 요신(堯臣)이고 그와 각별히 지냈던 하나 뿐인 형은 이름을 몽태(夢台)라고 했다.



그의 집안이 이곳 정상동에 자리잡은 것은 그의 오대조인 이증(李增)에 의해서다.
증은 1419년(세종 원년) 한양에서 태어났는데 진해와 영산의 현감을 지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은 관직에 나가 행정 일을 보는 것에 그리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영산 현감을 지내다가 중도에 안동으로 내려와 남문 밖 운흥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것이 고성 이씨 집안이 안동에 자리잡은 시작이 되었다.
그의 아들 굉( )은 아버지와는 달리 성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수많은 관직을 두루 거치다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영해에 유배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종반정으로 다시 풀려난 뒤 한성좌윤 개성유수 등을 거친 후
1513년(중종 8년) 안동으로 내려와서 안동부성에서 낙동강을 건너 마주 보이는
강가 언덕에 귀래정(歸來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만년을 지내다가
1516년 일흔 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1998년 4월 귀래정 서쪽의 야산들이 중장비에 의해 밀려나가고 있었다.
안동시가 강 건너 남쪽으로 뻗어나기 위해서 이곳에 대규모 택지를 조성하게 된 것이다.
4월 6일 이굉의 묘를 필두로 해서 이 땅의 주인들이 차례로 오백 년의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다음날인 4월 7일에는 이굉의 손자인 명정(命貞) 묘의 이장 작업을 시작했다.
묘에는 명정과 그의 부인인 일선 문씨(一善文氏)가 합장되어 있었다.

이중 일선 문씨의 관에서 거의 미이라에 가까운 상태의 시신이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관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할머니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고
50여점에 이르는 의복과 장신구 등의 유물이 당시 모습 그대로 출토되었다.
이 일선 문씨의 미이라 소식은 텔레비전 뉴스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안동에서도 대단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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