胎中十月之恩 何以報也 膝下三年之養 未能忘矣
태중시월지은 하이보야 슬하삼년지양 미능망의
(태중에서 열 달을 품으신 은혜를 어떻게 갚으리까.
슬하에 삼 년을 키우심도 잊을 길 없나이다.)
萬歲上更加萬歲 子之心猶爲嫌焉 百年內未滿百年 母之壽何其短也
만세상갱가만세 자지심유위혐언 백년내미만백년 모지수하기단야
(만 세 위에 다시 만 세를 더 살지라도 아들의 마음은 오히려 부족하온데
백 년 안에서 백 년도 채 못 사셨으니 어머님의 수명은 어찌 이다지도 짧으십니까.)
簞瓢路上行乞一僧 旣云已矣 橫釵閨中未婚小妹 寧不哀哉
단표로상행걸일승 기운이의 횡차규중미혼소매 영불애재
(표주박 하나로 길거리에 걸식하며 사는 저는 이미 말할 것 없사오나
규중에 혼자 남은 어린 누이동생은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上壇了 下壇罷 僧尋各房 前山疊 後山重 魂歸何處 嗚呼哀哉
상단료 하단파 승심각방 전산첩 후산중 혼귀하처 오호애재
(이제 벌써 상단불공도 마치고 하단 제사도 끝나서 스님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처소로 돌아갔습니다.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 또한 겹겹인데 어머니의 혼은 어디로 돌아가셨습니까.
오호라. 슬프고 슬프도다.)
진묵대사 영정
천금지석 산위침(天衾地席 山爲枕)
월촉운병 해작준(月觸雲屛 海作樽)
대취거연 잉기무(大醉居然 仍起舞)
각혐장수 괘곤륜(却嫌長袖 掛崑崙)
하늘은 이불이요 대지는 자리로다
태산을 베개하고 구름을 병풍삼네
저 달은 촛불이요 바다는 큰 술잔
얼큰히 대취하여 자리 털고 일어나
어깨춤 덩실덩실 치려고 하다말다
행여나 장삼자락 곤륜산에 걸릴레라
진묵조사(震默祖師, 1562년 명종 17-1633년 인조 11, 72세)
이름은 일옥(一玉). 만경 불거촌(萬頃 佛居村)에서 태어나 7살 때에
막상 도착해보니 불이 난게 아니고 한 집에서 불빛이 비춰나와 주인을 불렀더니
바로 석가여래의 후신을 자처하시는 진묵대사가 태어나신날이었습니다.
대사의 부모는 마흔이 넘도록 아이가 없어
봉서사에 다니면서 지극하게 생남불공을
구슬이 변하여 부처가 되는 꿈을 꾸고 낳으셨다 하여
어머니 제가 누군지 아세요?
뭐, 누구라니?
내가 누구냐니까요?
호호호, 네가 내 아들인 일옥이지
엄마는 내가 일옥이인줄만 알고 부처님인줄은 모르는구려 뭐 부처!
내가 일옥이가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에요
'얘가 부처란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어디서 듣고 부처라고 할까?
부처가 배워서 아나요 깨쳐서 아는 것이지요.
그래....." 비로소 어머니는 천신에게 받은 옥이 변하여 부처가 되자
그 후 부모님들은 대사를 일옥이라 부르지 않고 우리 부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일곱살이 막 지난 어느날 "어머니 봉서사에 가서 살겠습니다."
"아니, 부처님 집에서 살지 절에 가서 무얼 하려고 합니까?"
"부처가 절에서 살아야지 어떻게 마을에서 살 수 있습니까?
"도대체 모를 일이로구나."
대사의 소원이 하도 간절하여 대사의 부모님들은 할 수 없이 봉서사에 데리고 갔습니다.
"자! 부처님 원대로 봉서사에 왔으니 어느 스님이든지
둘러선 스님중에 혜영대사를 스승으로 정하니
"네가 나의 상좌가 되고 싶으냐?"
"예"
"너의 이름이 무엇이드냐?"
"저는 성이 불가(佛哥)이고 이름은 일옥입니다."
"불가라는 성도 있느냐?"
"저의 아버지는 불교를 믿은 후로는 성을 석(釋)씨로 고쳤으니
"허, 나이가 몇이드냐?"
"일곱살입니다"
"너의 몸이 일곱살이냐 마음이 일곱살이냐?"
"스님의 머리가 백발이신데 스님의 머리가 세었습니까? 마음이 세었습니까?"
"나의 머리가 센 것이지 마음이 센 것이 아니다."
"저도 육체가 일곱살이 된 것이지 마음이 일곱살은 아닙니다."
"너는 왜 여기를 왔으며 무엇을 하려고 왔느냐?"
"네, 부처가 되려고 왔습니다."
"깜찍한 말이로다.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된다는 말이냐?"
"하기야 제가 본래 부처인데 세상 사람이 몰라주기 때문에
"네 말과 같이 본래 부처라면 어찌하여 지금 중생의 몸을 받았느냐?"
"스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중생과 부처가 둘입니까?"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면 부처가 되겠다고 수행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
또 네말처럼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중생이니 부처니하는 두 이름이 있겠느냐?"
"스님, 아는 사람에게는 둘이란 말도 틀리고 둘이 아니란 말도 오히려 우수운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이에게는 분명히 부처는 부처요. 중생은 중생이라고 일러줘여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요! 마음이 어두우면 중생이기 때문이지요.
같은 거울이라도 밝은 거울이 있고 흐린 거울이 있듣이
사람도 깨달은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중생과 부처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너는 그런 말을 누구에게서 배웠느냐?"
"스님은 숨쉬고 밥먹고 잠자는 것을 누구에게 배워서 아십니까?"
"........."
혜영대사는 간밤에 석가여래께서 수만 대중을 거느리시고
대사는 좋은날을 골라 일옥의 머리를 깍고 법복을 입힌 다음
어느날 대중스님들의 꿈에 금강밀적신장이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
"대중들은 듣거라! 새로 들어온 동자스님께 향로다기를 들려서
"허! 꿈이었구나"
"금강밀적신장이 현몽을 했는데 대중이 모두 같은 꿈을 꾸었구나."
"동자스님을 받들어 모셔야 겠어."
대중들이 똑같은 꿈을 꾼 뒤로는 일옥사미를 함부로 대하지도 않고
심부름을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1909년 기유년 상제님 께서 전주 西方山(서방산) 鳳棲寺(봉서사) 아래에 계실때,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金鳳谷(김봉곡) 이 시기심이 많더니
하루는 震默(진묵)이 봉곡에게서 "성리대전" 을 빌려가면서봉곡이 후회하여
곧 찾으러 올것을 알고 걸어가면서 한권씩 보고는 길가에 버려 봉서사
山門(산문) 어귀에 이르기 까지 다보고 버렸느니라.
봉곡이 책을 빌려준 뒤에 곧 뉘우쳐 생각하기를
"진묵은 불법을 통한 자인데 만일 儒道(유도) 까지 통하게 되면
대적하지 못할것이요, 또 불법이 흥황해지고 유교는 쇠퇴하여 지리라.
하고 급히 사람을 보내어 그책을 찾아오라고 하니,
그 사람이 뒤를 쫒아 가면서 길가에 이따금 한권씩 버려진 책을 거두어 왔느니라.
그뒤에 진묵이 봉곡에게로 가니 봉곡이 "빌려간 책을 돌려달라" 고 하거늘
진묵이 "그책은 쓸데없는 것이므로 다 버렸노라" 하니 봉곡이 크게 노하는 지라.
진묵이 말하기를 "내가 외우리니 기록하라" 하고 외우는데
한글자도 틀리지 아니 하였느니라.
봉곡이 이로부터 진묵을 더욱 시기하더니,
그뒤에 진묵이 上佐(상좌) 에게 이르기를
"내가 8일을 기한으로 하여 "尸解시해"(유체이탈법) 로 천상에 다녀올 것이니
절대로 방문을 열지 말라".하고 떠나거늘
하루는 봉곡이 봉서사로부터 서기가 하늘로 뻗친것을 보고
"내가 저기운을 받으면 진묵을 능가할수 있으리라",
하며 즉시 봉서사로 올라 갔느니라.
봉곡이 서기가 뻗치는 법당앞에 당도하여 진묵을 찾으매 상좌가 나와서
"대사님이 출타하신 지가 얼마 안됩니다" 하니,
봉곡이 "옳거니" 법당의 서기를 이참에 받아야 겠다 하고 법당 문을 열라. 하매,
상좌가 "대사님이 자물쇠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하거늘
봉곡이 큰소리로 호령하며 기어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뜻밖에 진묵이 앉아있고
그의 몸에서 서기가 뻗치더라.
봉곡이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진묵이 시해로 어디론가 갔음을 알아 차리고
"서기를 못받을 바에야 차라리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겠다" 하고 마음먹고,
상좌에게 "어찌 시체를 방에 숨겨두고 혹세무민 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을 해야 하느니라, 하며
마침내 마당에 나무를 쌓아놓고 진묵의 시신을 화장하니
어린 상좌가 울면서 말리거늘 봉곡은 도리어 화를 내며 상좌를 내 쳤느니라.
때마침 진묵이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내가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이러느냐" 하니,
상좌가 진묵의 소리를 듣고 통곡을 하거늘 봉곡이 저것은 妖鬼(요귀)의 소리로다.
듣지말고 손가락뼈 한마디,수염 한올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 하며
일일이 다 태워 버리니 진묵이 급한 음성으로 상좌에게
"손톱이라도 찾아보라" 하는데 봉곡이 상좌를 꼼짝도 못하게 하며
손톱도 까마귀가 물고 날아갔다' 하는지라.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각지방 문화의 정수를 거두어 모아
천하를 크게 문명하고자 하였으나
이제 봉곡의 질투로 인하여 大事(대사)를 그르치게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나는 이제 이땅을 떠나려니와
동양의 道通神(도통신) 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 같느니라, 하시니라. [도전4: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