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보다 150년 앞선 에세네파의 메시아 유대교 주류에서 쫒겨난 비주류 제사장 [사해 쿰란문서] (((깜언니우)))
교리, 가르침, 조직 초기 기독교와 완전 동일 예수보다 150년 앞선 에세네파의 메시아 과학동아 1998년 8월에는 '사해사본'에 대해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이 사본이 유태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의 고문서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종교의 창시자는 '이스라엘의 구세주', '정의의 교사', '이사야의 고뇌에 찬 종', '하나님의 아들' 등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괴로운 죽음을 맞을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부활해 세계를 구원하고 최후의 심판을 기다린다. 그는 인내와 인간성과 형제애, 자선과 빈곤을 가르치며 새로운 계율과 정의와 세례, 그리고 성찬(聖餐)을 만든다.
이 사람이 누구냐고 퀴즈에 낸다면 거의 모두 '예수'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사해사본'에 적혀 있는 이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록돼 있지 않다. 오직 '구세주'라고만 표기돼 있으며, 천국을 만들기 위해 최후 심판의 날까지 고민하는 사람을 구원해주는 인물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 사람을 예수라고 단정한다면 간단한 일이지만 문제는 이 구세주가 예수보다 1백50년 전에 살았다고 추정된다는 점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크리스찬이 믿는 예수는 오직 단 한사람의 인물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가르침은 이미 그 이전에 다른 사람에 의해 설교된 것을 예수가 되풀이한 것이 아닐까." [과학동아 1998년 8월호]
1947년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사해 근처 쿰란의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문서는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의 고문서이다. 에세네파에 대한 학술적인 기록은 사해문서가 발견되기 50년 전 1896년 기록에 나타난다. 캠브리지대 교수가 이집트 방문중 카이로에서 구입한 문서 가운데 벤 에즈라 유대교 회당에서 이 에세네파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다가, 후에 사해 동굴 4번에서 발견된 '공동체의 규칙'과 다른 문서들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1986년 처음 언급된 이 분파의 존재에 대한 가설이 옳았던 것으로 증명되었다.
에세네파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BC 152년 요나단이 대제사장직을 찬탈하자 제사장이었던
그의 후계자가 추종자들을 데리고 사해 서북쪽에 있는 쿰란으로 가서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은 알렉산드로스 얀네우스 치세(BC 103-76)때 매우 번창했으나, AD 68년 6월 로마군에 의해 파괴 되었다. 쿰란 수도자들은 사악한 제사장들이 봉직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졌다고 보았다.
외경을 다룬책인 '숨겨진 성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필사본에 나오는 '사악한 사제'는 마카베오 가문의 요나탄이나 시몬일 것이다.
선한사제는 '정의로운 스승'이다. '정의로운 스승'(정의로움을 가르치는 분)에 관해서는 그동안 논쟁이 많이 벌어졌다. 듀퐁-조머 보고서는 쿰란문서, 특히 정의로운 스승이 에세네파 안에 그리스도교의 싹이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씨오더 H.가스터는 그러한 주장이 엉터리라고 반박했다.
구약과 신약 중간시기에 나온 많은 문헌이 묵시록적이고 메시아적인 점을 고려하면, 예수 그리스도(메시아)와 같은 인물의 출현이 의외는 아니었다. 유대교 비경전들의 메시아적 성격 때문에 그 문헌들을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수정을 거쳐 '그리스도교화'하였다. 심하게 말하자면 위조되어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증거하려고 했다. 에세네파나 다른 유대교 종파가 그리스도교의 출현과 연결된다는 보고 견해에 전혀 무리가 없다." [윌리스 반스토운/숨겨진성서 1권/ 이동진 역 / 문학수첩 / P264~265]
예수보다 150년앞선 에세네파의 메시아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동굴에서 금욕적인 종교 생활을 하던 에세네파는 유태교의 한 갈래로 영지주의적인 성격이 강했던 집단이었다. 이 무리는 구세주 또는 정의의 사도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끌었다. 문헌에 따르면 이들은 두 종류의 메시지를 기다렸는데, 곧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 사이에 종말 전쟁이 일어난다고 보았고, 결국 빛의 아들들이 승리하여 '다윗 계통의 임금 메시아'와, 사독 계통 '제사장 메시아'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다스릴 것이라고 믿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율법과 제사와 같은 형식과 권위에 치우친데 비해, 에세네파는 신비주의와 금욕 생활을 내세워 유대 율법서를 지키고자 했다.
이들은 2차 성전시대 유대교에서 주세력이었던 사두가이파와 바리새파로부터 심한 공격과 체포, 구금등을 당한 반체제 세력이었다. 그들은 빛의 아들들(에세네파)이 어둠의 자식들에 대해 벌이는 40년의 성전을 치른 후
그들은 AD 68년에 로마군과 맞서 싸워야 했으며, 사해동굴의 문서들은 이때 로마인들의 약탈을 피해 동굴 속에 감추어졌다.
쿰란 수도자들은 본래 제사장들이 지키던 정결법을 철저히 준수했다. 수도자들은 성(性)을 불결하게 여겨 독신 생활을 했으며, 재산과 예배, 독서와 식사를 모두 함께 했다.
초기 기독교의 형태가 불교에서 스님들이 머리를 깎고 수도에만 정진하던 것과 비슷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에세네파의 생활이 그랬다. 그들은 정결례와 금욕주의적 실천을 잘 지킴으로써 다가오는 신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기대했다.
또한 그들은 일반적인 유대교와는 달리 일요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묵시 문학과 종말론적 기대에 찬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야말로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것이라고 기대했으며,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오면 빛의 아들들이 어둠의 아들들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고 믿었다.
흰색 복장에서부터 종교의식에 따른 식사, 기도에서 두루마리의 제작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모든 일상사는 다가올 최후의 결전에 맞추어졌다.
기독교의 뿌리 에세네파는 오늘날의 유대교와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들어 에세네파는 성전에서 예배하는 대신 하루에 다섯 번 규칙적인 기도를 했고 이는 랍비 유대교에 그대로 전승되었다. 기독교에 끼친 영향은 신약성서에 '의로운 선생님'이라는 표현이나 산상수훈의 설교 내용은 쿰란의 사상을 비교할 때 이해하게 된다.
쿰란의 텍스트 속에는 "네 형제를 네 몸처럼 사랑하고, 가난하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우라"는 구절이 있는가 하면
'정의의 스승'이 "나는 참회하는 자를 치유하며, 단순한 자를 위한 지혜이며, 마음이 약한 자의 위로"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고유한 것으로 믿어지던 '성령','하나님의 아들','복음','새로운 약속(신약성서)' 등의 표현도 이미 존재하고 있다.
"지혜로운 자는 복이 있나니, 고난을 겪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며 가난한 자, 배고픈 자, 근심있는 자에게 영원한 삶을 약속하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의 허구성 이미 예수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 그리고 신약성서 속에 그가 직접 말한 것으로 되어있는 교훈들이 여러 학자들의 원전연구에 의해 와전 또는 허구적 첨가라는 의혹을 짙게 받고 있던 터에 이 문건들의 발견은 신학적 논쟁에 새로운 불을 지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된 사해사본에는, 헬라어로 기록된 기독교 신약성서의 “의로운 신(sidqat el)”, “율법의 일들(ma’aseh torah)”, “하나님의 교회(gehal el)”, “빛의 아들들(bene’or)”이라는 표현등도 발견되고 있다.
교회조직까지 영향 또한 에세네파가 초기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초대교회 조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초대 교회의 집단적 공동체 생활이나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하는 새벽기도 등이 그것이며, 초대교회의 지도자를 뜻하는 그리이스어 'Episcopus'는 감독을 의미하는
쿰란 텍스트연구로 정평이 난 하르트룻 슈테게만(독일) 같은 신학자는, 두 텍스트 사이의 유사성은 겉보기일 뿐이며 내용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쿰란의 텍스트 발견 50년을 맞아 이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독일의 슈피겔지는 "예수가 가르친 교훈을 당시 유대교 안에서 찾아볼 수 없다"던 종래의 주장은 이제 기독교 교리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일부의 학자들은 에세네파의 창시자인 '의로운 선생'이 복음서속의 야고보(James)혹은, 세례 요한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정부 관광국 서울 사무소(I.G.T.O) http://www.israel.co.kr/ , 성서와 고고학 (2) 사해사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쿰란의 사해문서중 가장 오래된것 중의 하나인 '공동체의 규칙'은 초대 기독교와 중세시대의 수도원의 규칙서와 놀랍도록 닮아있다.
숨겨진 성서의 저자가 '공동체의 규칙'에 대해 해설한 것을 아래에 옮겨보도록 한다. "'공동체의 규칙'은 카이로의 에즈라 공회당에서 1896~1897년에 발견된 '자도크 문서-다마스쿠스 문서'와 그 내용이 비슷하다. 이러한 규칙서들과 유사한 것이 유대교 고대문헌들 가운데서는 찾아볼 수가 없고 '다만 이와 비슷한 문헌들이, 기원 후 2세기에서 4세기 사이 그리스도교에서 '교회규칙'이라고 일컫는 것이 많이 나왔다.' (게자 베르메스, 사해문서, 71페이지참조)
에세네파와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를 시어도어 H.게시터는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게스터, 영어로 번역된 '사해문서' 35페이지 참조)
구성원들이 이 공동체를 부를 때 사용한 명칭은 팔레스티나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사용한 교회라는 명칭과 똑같다. 공동체에는 '거룩한 사람'이 12명 있어서 이 사람들이 전반적인 지도를 했는데, 그리스도교의 열두 사도와 놀랍게도 상응한다. 12명의 거룩한 사람 위에는 고위 지도자 3명이 있었는데, 이것은 요한,베드로,야고버가 초기 그리스도교의 세 기둥으로 지정된 것(갈라디아서 2:9이하)과 같다.
공동체는 또한 '메바케림(감독자)'이라는 정규 조직이 있었는데, 메바케림은 그리스어 '에피스코피(주교)'와 같은 말이다.
공동체는 '사막에서 길을 준비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규정했는데, 이말은 세례자 요한이 자기 사명을 규정할 때 구약성서에서 인용해 온 것이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성서 제3권/ 이동진 역 / 문학수첩/ P262~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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