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민희식이 쓴 불일출판사의 『토마스 복음서에 나타난 불교사상』이란 책에서의 논지를 반박하며 독자들에게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민희식이 그의 저서에서 기독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뿐아니라 더러 위서 (僞書.Apoctypha:가짜 성서)로까지 취급하는 '토마스 복음서'를 근거로 기독교는 붓다의 사상을 모체로 하여 변용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불교의 교리에서 출발한 종파인데 지금 현재 두 종교가 왜 이렇게 달라졌는가하는 것의 증거로 '토마스 복음서'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기서는 '토마스 복음서'의 내용과 저자,위서로 판명된 배경을 말하고 또한 민희식이 법화경과 관련지으려 하는 구절을 설명함으로서 그의 논지에 반박하고 있다.
책소개
비교 종교의 책을 쓰는 사람은 그가 취급하는 종교인들 편으로부터는 남의 종교를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자기가 직접 신앙을 체험하지도 않고 책이나 경전만을 읽고 어설프게 또한 박하게 남의 종교를 평한다고 비난을 받는다. 그리고 그가 속해 있는 종교나 교단으로부터는 타종교에 대해서 너무 후한 관용을 베푼다고 성토당하기도 한다.
사실 저자는 가톨릭 신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이번에 힌두교와 불교에 대한 책을 펴내면서 좀 망설였으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쉽고 읽고 또 타종교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터보자는 취지로 책을 꾸며 보았다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타 종교를 연구하는 것이 자신의 종교 공부의 일부란 생각을 가져야 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으며 그리스도교 중에서도 특히 가톨릭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타종교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또 대화의 의욕도 강하게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대화를 하기 위하여는 우선 자기 종교의 공부도 충분히 해야 되겠지만 상대방의 종교 연구도 마땅하며 그런 취지에서 어려운 용어 없이 두 종교를 설명하는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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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문제 제기 '토마스 복음서'의 출현 '토마스 복음서'의 내용과 저자 이색적인 요소 유사점 '토마스 복음서'의 저자 성서와 위서의 차이점 위서의 범람 제2경전과 위서 '토마스 복음서'와 법화경 법화경의 방편품(方便品) 영지주의와 불교 사상은 다른 것이다 예수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방 불전 3장의 결집과 대승 경전 3장 결집(三藏結集) 대승 경전의 성립 배경 법화경의 성립 연대와 대승 비불설 법화경의 성립 연대는 서기 2세기 전반이다 대승 비불설 : 법화경 포함 대승 경전은 붓다의 말씀이 아니다 법화경의 내용 분석 법화경의 중심 사상 법화경의 일곱 가지 비유 1. 부잣집의 불난 이야기(火宅喩) 2. 집 잃은 아들의 이야기(窮子喩) 3. 약초의 비유(藥草喩) 4. 환상(幻像)의 성(化城喩) 5. 옷 속에 매달아 준 보석(衣珠喩) 6. 상투 속의 보배 구슬( 珠喩) 7. 좋은 의사(良醫)의 비유(醫子喩) 그리스도교인의 눈에 비친 법화경 1. 연꽃의 불전(蓮花經, Lotus-Sutra) 2. 법화경의 경전성(經典性) 3. 법화경의 문체(文體) 4. 법화경의 구원론(해탈관) 종교인 대화의 길 대화의 광장 자기를 알고 남을 알아야 한다 타종교에 대한 비방은 금물이다 교리상의 타협(妥協)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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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강원도 문막 태생으로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신학부을 공부, 신학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가톨릭대학 신학부 기초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종교학과에서도 교수를 역임하였다. 미국 포담대학에서 초청을 받아 도미하였다. 주요 저서로 『가톨릭 신학 개설』『가톨릭 신학의 어제와 오늘』『그리스도교와 힌두교·불교』『바티칸 공의회 신학 개설』『학생 교리』『토마스 복음서와 법화경의 비교 분석』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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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문막 태생으로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신학부을 공부, 신학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가톨릭대학 신학부 기초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종교학과에서도 교수를 역임하였다. 미국 포담대학에서 초청을 받아 도미하였다. 주요 저서로 『가톨릭 신학 개설』『가톨릭 신학의 어제와 오늘』『그리스도교와 힌두교·불교』『바티칸 공의회 신학 개설』『학생 교리』『토마스 복음서와 법화경의 비교 분석』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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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운 - 1924년 강원도 문막에서 태어났다.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 박사를 받았고 서울 가톨릭 대학교 신학부 기초 신학 교수와 서울대학교 문리과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살며 집필 생활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그리스도교와 힌두교.불교>, <가톨릭 신학 개설>, <학생 교리>, <토마스 복음서와 법화경의 비교 분석>,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가톨릭 신학의 어제와 오늘> 등이 있고, 옮긴책으로는 <성 비오 10세>가 있다.
(1986년 10월 26일 주간 중앙 인용)
~ 수도생활 끝내고 본국에 돌아가 불교이름은 [이 사] 결혼 요구 피해 인도로~
한양대 민희식 교수가 발굴한 [13세 부터 29세 까지의 행적]을 프랑스 박물관에서 자료 입수.
구약성서 39권과 신약성서 27권 어디에도 밝혀지지 않고 있는 예수의 13세 부터 29세까지 16년 동안의 행적이 최근 베일에 가려졌던 그 기간동안 [불교를 수행하던 승려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한 석학의 발굴에 의해 행적이 밝혀져 불교계는 물론 한국 및 전세계 종교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주간 중앙 86년 10월 26일자)
예수의 13세부터 29세까지 16년동안의 행적을 밝힌 각종 기록을 발굴 수집해 귀국한 장본인 한양대 교수 민희식씨 84년 펜번역 문학상 85년 프랑스 대통령으로 부터 문화훈장을 수여 받은 바 있는 민교수는 "나는 특정종교의 신자가 아닌 학자로서 신앙의 문제가아닌 학문자료의 견지에서 서양문화의 근본이 되는 기독교를 연구하며 훌륭한 예수의 업적과 행적을 오랫동안 연구조사 추적해 왔다."고 말했다
그동안 인도의 여러곳을 답사해온 민교수의 예수 생애 추적의 개가로 인정되는 이 자료는 인도, 네팔, 티벳 등 사원에 산재해 있던 불교계 경전과 기록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 기록들은 그동안 프랑스 국립 박물관에 비장된 채 공개되지 않던것을 민교수가 지난 여름방학을 이용해 발굴, 입수해 귀국한 것, 민교수는 이 자료 공개와 발굴 내용 발표회를 지난 9월 20일 조계사 관음회를 통해 열었는데 이 이후 기독계계 신학도들 사이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것, 기독교계 기록들이 침묵하고 있는 예수의 청년기의 활동내용을 담고 있는 이들 불교계 연대기와 기록은 인도 라다크주 지방의 수도[레에]남쪽 40킬로미터 지점의 [하이미스] 7대 사원에서 발견된 티벳어 경전들.
예수 생애에서 밝혀 지지 않은 기간의 진상에 대해, 모호한 점에 짙은 회의를 품었던 서양의 학자들은 많았고, 대표적인 인물이 제정 러시아 때의 러시아인 [니콜라스 노코비치] 그는 인도 네팔등지의 여러 사원에 있는 예수의 기록을 모아 지난 1894년 불어판으로 발표했으나 (예수전)의 편찬자 [예르네스트르남]및 기독교단 측의 박해를 받고 이 자료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후 프랑스 정부의 특별 배려로 이 희귀 자료를 다시 찾아 귀국한 한양대 민희식교수는 "예수가 원효대사와 같은 불교의 승려로 활약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예수의 불교식 이름은 [이사(ISSA)] 그는 13세때 유태법에 따라 가장권을 갖고 결혼을 해야 할 입장에 처한다.
당시 소년들 가운데 유난히 준수한(이사)를 사위로 삼고 싶어하는 어느 부호의 끈질긴 요구가 있자 그는 비밀리에 인도상인을 따라 인도지역으로 떠난다.
(이사)는 14세때 아라인들 속에 정착 힌두 거장들에게 베다, 유파니 사이드 등을 공부하나 4성계급을 주장하는 브라만교에 실망을 느끼고 이를 비판하며 이곳을 탈출한다.
(이사)는 만인의 해탈 가능성과 평등 사상을 부르는 불교에 매료되어 불교도들 틈에 들어가 부다가야, 녹야원, 베나레스 등지에서 6년간 불교의 교리를 배우며 수도 생활을 한다.
(이사)의 불교공부는 케시미르를 거쳐 라다크의 [레에]에서 팔리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며 계속하여 티벳에서 그곳 밀교계 고승 맹그스테에게서 기적을 일으키느 비법과 심령치료 비방등을 집중적으로 익혔다.
불교 승려인(이사)스님의 이스라엘 귀국은 페르시아를 거쳐 불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29세때 이루어진다.
(이사)는 이스라엘로 돌아와 불교의 가르침을 몸소실천 "간음한 여인의 예"하며 새로운 민중의 희망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렇듯 불교적 연대기에 신라 원효, 혜일대사등과 같이 (이사)승려의 자세한 활동기록이 소개돼 있는데 반해 기독교계 문헌[누가복음]이 다만 [그때까지(30세) 예수는 사막에 있었다.]고만 막연히 기록되고 있다.
민교수는 [불교측 문헌이 정확한 이유는 순교 당시의 견문 기록임에 반해 기독교측 문헌은 오랜 세월이 경과된 뒤 여러시기에 걸쳐 여러사람들에게 의해 쓰여진 까닭]이라고 지적했다.
뿐만아니라 오랜세월이 지난 뒤 제자들은 기독교 교리의 확립을 위해 예수의 기록을 비교적 정확히 기술한[로마서]복음서 등이 지나치게 불교적 색채를 띄고 있어 바이블 편집에서 삭제했다는 것.
기독교 신약성서 많은 부분이 불교의 법화경에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하는 민교수의 불교의 장자궁자와 기독교의 "탕자의 비유"의 외에도 삼위일체 삼신불 여신의 유래등 많은 부분을 예로 들었다.
[기적의 비법들 익혀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의 뜻인[메시아]의 어원은 불교에서 말세중생을 구제하러 올 미래불인 미륵 마에트리아, 혹은 메테아에서 유래했다는 일화를 비롯 예수에게 세례를 준 "성 요한"의 이름은 한역불전의 정반왕(석가모니의 부친)의 서양식 발음 (이태리 "조비니" 프랑스 "장" 영국 "존")에서 나왔다는 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이름은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고 민교수는 주장하고있다.
[필라드]와의 대립과 예수의 십자가 처형, 유다의 배신 등의 숨은 비화까지 철저하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처형 후에 예수의 무덤이 빈 것"이 이사의 죽음을 계기로 유태인의 반란이 일어날 것이 두려워 "빌라도"가 "이사의 무덤에서 시체를 옮겼다."고 기록돼 있다.
또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총독 "빌라도"가 예수제거를 결심한 이유는 "민중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사"가 비록 혁명적 민중 지도자가 될 의지가 없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그를 처형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까닭"이라는 것.
[구세주의 뜻 "메시아"어원도 불교에서, 예수를 (이사)로 표기한 기록에는 모세를 (모사)로 표기해 소개하며 모세는 이스라엘인이 아니라 이집트의 두번째 왕자였으며 이스라엘 인들과 "홍해의 간만의 차이"를 이용해 탈출 제2의 왕국건설을 꽤했다.]고 기록했다.
예수 생애를 밝혀지지 않는 부분을 되찾으려는 노력과 이들 불교적 자료는 한때 "리차드 보크"가 실제로 인도, 티벳 등을 답사, 다큐멘터리 필름(The Lost years of Jesus)에 담겨진 적도 있었다는 것.
이러한 사실을 대해 [예수를 신의 아들]로 신앙하는 기독교측의 반론여부에 대해 민희석교수는 "오히려 강연 요청을 받고 있는 이번의 발표는 진실을 밝히려는 학문적 열의이 결과"라고 말했다.
예수가 불교를 수행하며 승려활동을 했다고 해서 예수의 위대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게 민교수의 반문이다.
이상은 1986년 10월 26일자 [주간중앙]을 인용 게재함으로 독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독자 코멘트
예수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마당에 실재 불교승려로 수행 했었다는 것은 실존인물임을 증거하는 것이므로
기독교에서 오히려 반가워해야 할 일 아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