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권 가슴 아픈 추억
미O 이를 처음 만났던 태양다방
당시 나는 방위 복무중 이었습니다
그때 미O 이가 머리가 아프다기에
약을 사다 준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사랑 했지요
금사 중학교 밑에 살때
너무 괴로워 수면제를 먹고 자다가
수면제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집을 나오는데
그때 약속이나 한것처럼
집앞으로 너가 걸어왔지
난 그때 울었다
너가 물었지
왜그래 아프냐고
아니 너무 괴로워
수면제에 잠들려다
수면제에 취해서 비틀거린다고...
그런 나를 너는 팔을 부축해 주었지
내가 제대후 얼마 안되서
너가 찾아 오기로 한 날
나는 너를 기다리려고
옥상으로 가 있는데
길이 엇갈려
너는 엄마한테 붙들려
약2시간 가량 엄마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
그러다 내 노래 소리를
들었는지
너가 옥상으로 올라왔지
그때 너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
나는 너무 기뻐서 너를 껴 안았지...
세상 살면서
그때 처럼 기뻣던 적은 없었다....
내가 제대 하던날(부산 복천동 중대본부)
미O이가 울산에서 내려와
제대 기념으로 당시 유행하던
은색 전자 라이터를 내게 선물 했었다
그날 저녁 산수탕 여관에서 같이 자는데
미O이는 나를 거부 했었다
화가 나서 집에 간다고 하니까
내 말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능한 나와 독살스런 어머니 때문에
임신이 두려웠던 것이다
언젠가 평창에 처음 갔을때
터미널 옆 강가 뚝에서
내가 장난으로
너가 말 안들으면
나는 부산으로 그냥간다 했더니
미O이 눈에는 금방 눈물이 글썽 거렸지
참 착하고 나를 정말 사랑했던 사람인데.....
올9월5일 평창에서
올 4월 25일 평창에서
언젠가
종부리 오빠집을 찾아 간적이 있었지
그때 우연히 집을 찾다가
개울가에서 빨래를 다하고
머리에 빨래를 이고 나오는
너와 마주쳤지
그날 저녁
종부리 오빠 집에서 자면서
내가 물었지
아까 빨래터에서
만났을때 안 기쁘던?
하고 물어보니
너는
빨래를 던져 버리고 안기고 싶다 그랬지
그때의 그 기쁨.....
그때 나는 종부리 오빠 집에서
너와 백년해로 한다고
각서를 썼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미O아
지금이라도 너가 돌아 온다면
나는 그 약속을 지킬수 있는데......
OO이 너가 우리집에서 처음 잠자던 날
너는 황금색 세로 줄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왔었지
나는 언제나
너를 안기 보다는
내가 안기는걸 좋아했지
내가 어려서인지
너의 품이 좋아서인지
나는 항상 너의 품에 안기는걸 좋아했지
너의 품이 그립다.....
경기도 용인 어정리 살때
당시에 눈이 많이 와서
정말 세상이 하~~얗게 변했었지
그때 조그만 창문가에서
나는 뒤에서 너를 안고
눈쌓인 세상을 바라 보았지
온통 하~얗게 변해번린 세상을....
어정리 강근수지 다닐때 였지
그때 담배값이 없어서
그냥 출근 했는데
너는 주인집 아주머니에게서
돈을 빌려서 청자 담배를 사 가지고 와서
마침 점심 쉬는 시간이라서
축구를 하고 있는데
너는 나를 불러서
담배를 주고 갔었지
그 추운 겨울날
너는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눈쌓인 큰 길가에 까지
마중 나왔었다......
지금 내 기억으로는
그때 너는 상의가
제천 갈때 입었던
흰색과 청색이 섞인 스웨터를
입고 있던것으로 기억된다
언젠가
송정역에서 아침7시10분
기차를 타고 너는 제천으로 갔었지
(송정에 친구 윤숙이 기억 하런지.....)
제천에서 평창으로....
그리고 얼마후 나는 너를 만나러
종부리를 갔었지..
송정역에서
아침 기차를 타고서
열차가 떠나기전
너는 끝내 고개를 숙였지....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아려 눈물이 흐른다
너는 그때
흰색 파란색이 섞인 쉐타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지
아~~~~
그때를 생각하면.....
미O아 나를 용서해주라
정말 미안하다
너를 만난다면 나는 무릎꿇고
너에게 용서를 빌께...
그러나....
그럴기회가 올런지.....
사랑했던 사람이여..
지금도 미친듯이 사랑하는 사람이여....
수원 강석근?
친구집에서 나는 나오고
너는 친구집으로 날 찾아 오는중 이었지
그런데 거짖말 처럼
우리는 만났다
길이 2갈래 였는데....
시간과 길이 어긋 났다면
못 만났을텐데..
거짖말 같이 만났었지.....
금사동 살때
언젠가 미O이 너는
내가 자꾸 가슴을 만져
가슴 있는데만 옷이 더러워 진다고 말했지
그때 마침 윗에 옷이 흰색 이었거든 ㅎㅎㅎ
동래수도 우정이와 살때
무슨일인지 모르지만
내가 너와 다툰후
기분 달래러 만화방에
간적이 있었다
그때 너는 얼마후에
만화방으로 나를 찾으러 왔었지
너는 나를 달래고
찾으러 다닐줄 아는 사람이었지
그렇게 착한 사람이었는데.......
동래수도에서 살때
잠자다가 내가 으~~응하고
아기처럼 칭얼대면
너는 나를 안아 주었다
내가 칭얼대는게
너의품에 안기고
싶다는 의사표시 였거든^^
미O이가 안아 주면
나는 미O이 가슴을 만지며
너무나 편안히 잠이 들었다
동래수도 살때
식당에서 밥먹을려고 할때
내가 있기 때문에
우정이가 장난으로
뒤에서 미O이 너를 껴안았지
나중에 내가 미O이한테
너가 어떻게 행동 하길래
너를 껴안냐고 나무랬지
나중에 우정이가 나에게
천권이 너가 어떻게 했길래
미O씨가
나를 보면 눈을 부라리며
나를 잡아 먹을듯 한다고 했지
그때
사실 우정이가 너를 껴안을때 기분이 나뻣다
그래서 미O이에게 화풀이 한거였다
금사동 아버지 돌아가신 집에 살때
그때 미O이는 직장에 다녔다(대륙상사?)
힘들게 직장생활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했었지
미O이와 나는 다락방에서 지냈다
그때 엄마가 미O이를 진심으로 대했다면
아침이나 저녁 둘중에 하나는 엄마가 했었다
그러나 엄마는 OO이에게
잘못한 것만 나무랐다...
미O이와 마지막 여행지가
태종대 인것 같다
태종대에서 미O이가
바닷고동을 사 먹자고 하는걸
그때 나는 창피하게 길거리에서
먹기 싫다고 안 사준것 같다...
그게 미O이와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대하리 처음 갔을때
거기에서 배추찌짐을 해 주었다
나로서는 처음 먹어본 음식
그냥 하얀 배추를 찌짐해서 준것 이었다
그게 만약 미O이 부모님이 해 주었더라면
미O이와 나는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엄마가 미O이가 조실부모 했고
배운것 없다고.....
결국 이렇게 서러운 내 인생
9월5일 미O이와 O규에게 편지를
써 가지고 갔었다
벌초하러 온다는 소식을
올4월에 갔을때 들었기 때문에
O규 보다 먼저 가서
편지를 전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11일 토요일 미O이와의 추억을 찾아
부산 송정 기장 연화리 대변 칠암리 까지
비오는 날씨 인데도 가고 싶어 갔다 왔다
그런데 어제 오다가
미O이 동생 O규 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O이가 잘 살고 있다고.....
이제 나는 미O이를 잊어야 합니다
30년을 가슴에 품고 살았는데
잊어야 합니다
잘살고 있다니 행복하길 빌어야지요
그런데 내 가슴에 恨은 어떻해야 합니까
어머니
이제 그사람을 잊어야 한답니다
나이 50에 혼자 서럽게 살게 하려고
그렇게 모질게 그사람에게 했습니까
자식이라고 어머니 때문에 집에 들어갔다
안되니까 다시 나오고 반복된 나의 인생
그렇게 모질게 했기 때문에
그사람이 떠난 겁니다
30년이 지나가는데 나는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잊어야 합니다
그사람이 가정을 가지고 잘 살고 있다는데
잊어야지요
그런데 잊지 못하겠습니다
행복하기를 빌어 주겠지만
내가 아파도
놓아주기 싫습니다
영원히 잊지 못 할것 같습니다.....
어머니
자식 인생을 이리 괴롭게 만들려고
그리 모질게 하셨습니까
나이 50에 이렇게 홀로 서럽게
살게 하려고 그리 하셨습니까
전에는 그사람을 찾으러 다니고
가슴은 아파도 기다리는 희망이 있었는데
이제는 영원히 잊어야 한답니다
남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으니
내게 돌아 올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찾아 갈수도 없구요
장하신 어머니
잘난 어머니 때문에
자식은 이렇게 서럽게 살고 있습니다
장남이라서 어머니를 버리지 못하고
집에 들어갔다가
그사람에게 모질게 하기에
다시 집에서 나오고 반복된 생활......
마지막으로 용인으로 도망 갔는데
향군법으로 고발 해서 결국 다시 내려 갔지요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게 그리 싫어서
자식을 고발 하신 어머니
장하십니다
그래서 자식은 이렇게
나이 50이나 처먹고 버림받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수면제를 먹어야 잠자는 자식을 보면서도
어머니는 오기를 부리셨습니다
내가 어머니를 모셨기에
몇달 먹고살것 정리만 되면
평창가서 죽으려고
청산가리를 준비해서 숨겼는데
그걸 찾아서 없앴지요
내 자식만 귀중하고
남의 자식은 천 하던가요?
그사람이 떠난후
월급타서 어머니께 돈을 드리고
다음날 평창 가서 죽을려고
동상동 여관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니면 보살필 사람이 없어
다시 어머니께 돌아 간적도 있습니다
지금 후회 되는게
그때 어머니를 버리지 못한 것이
지금의 내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버리고
그사람을 선택 했어야 하는데.....
어제 부산에서 돌아 오는데
영원히 잊어야 한다는 사실에
통곡을 하며 왔습니다
지금도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 했는데 왜 헤어져야 했을까요?
자식 인생 책임져 주지도 못 하면서
그리 모질게 하셨습니까
몇칠전 까지는
가슴 아파도 기다리는 희망이 있었는데
이제는 영원히 잊어야 합니다
잊어야 한다는 사실에
이 자식은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장남 이라는게 그리 대단한 건가요
그래서 장남 이라서
이렇게 서럽게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다리는 희망도 없습니다
영원히 잊어야 한다는 사실에
숨이 막히게 통곡하고 있습니다
이제 잊어야 한답니다
행복하기를 빌어야지요
그러나 나는 영원히 잊지 못 하겠습니다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사람이 떠난후
지금 까지도 가슴에 항상 체증이 있습니다
얼마나 한이 쌓였을까요
그런데 이제 잊어야 한답니다
영원히 잊어야 한답니다
30년을 가슴에 품고 살았는데
영원히 잊어야 한다는 사실에
이 자식의 가슴은 .......
나를 낳아 주시고
그사람을 만나게 해 주신 은혜
천지 보다도 크지만
지금의 저는
너무 원망 스럽습니다
가슴 아파도 그 사람을 기억 하며
남은 시간 속으로 걸어 가겠습니다
내가 사랑 했으니까
내가 가지고 가겠습니다
영원히 잊지 못 할것 입니다
사랑했던 사람이여
그대의 행복을 빌어 주리니
부디 행복 하시고
희미하게 나마
이천권 이름 석자를 기억해 주신다면
나는 정말 행복 하겠습니다
그대를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 합니다
사랑 했던 사람 이여
그대를 놓지 못하는 나를 용서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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