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과학원 내 고고민족역사연구소
O.V. 디야코바 박사가 고고학 계간지 ‘한국의 고고학’(주류성) 최신호에 발표한
‘연해주 중세시대 성지에 보이는 고구려의 전통’에서 확인됐다.
이 글에 따르면 말갈·발해·여진 등 퉁구스-만어민족이 거주했던 연해주에는
중세시대에 축조된 산성 40여개가 존재한다.
중세시대는 고구려가 멸망한 후 발해에서 요·금·동하국에 이르는 시기로,
당시 축조된 산성에 고구려의 영향이 보인다는 것이 디야코바 박사의 주장이다.
디야코바 박사는 산성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주변 계곡이 한눈에 보이는 고지에 축조된 석성(石城·사진)은
주로 말갈과 발해에 의해 축조되었고 외부를 조망하기는 쉬우나
접근이 어려운 산비탈의 성곽은 여진과 동하국(東夏國, 1217~1234)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디야코바 박사는 고지에 산 정상의 평지에 축조된 석성은
“접착제가 될 만한 다른 자재는 전혀 쓰지 않는 등의 축조기법이라든가
지리적 여건으로 볼 때 고구려 성곽과 매우 흡사하며
심지어는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런 축성 기술은 나라가 멸망한 고구려인이
발해로 유입되는 시기에 도입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 여진과 동하국 시기에 조성된 산비탈의 성곽은
연해주에서 26곳이 발견되었는데 진흙을 다져서 쌓는 판축 기법으로 축조됐으며
고구려·발해계 석성보다 분포 범위가 훨씬 넓다.
이 논문을 번역한 러시아 고고학 전문가 강인욱 부경대 교수는
“종래 한국에서는 만주지역에 견주어 거의 주목하지 않은
연해주 동북 산악지역 성곽 조사 성과를 중간 결산하는 한편,
그 전통을 고구려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자못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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