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

애국가와 우리나라 영토

평창군 대하리 2007. 9. 2. 11:04
우리나라 국가(國歌)인 애국가의 후렴구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말은
참으로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우리나라의 강역이 삼천리라는 것은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마을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 삼천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은연 중에
우리는 삼천리에 만족하며 살아가라는 이야기이다.

과거 근대 조선의 강역을
명나라 때의 서토인들은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다음은 단순하게 문헌에 나타나는
조선의 강역을 뽑아보았다.

명사기사본말(明史紀事本末) 권62에
"여도(輿圖)를 고찰해 보면
조선의 폭원은 동서 2천리이며 남북 4천리이다.
(考輿圖朝鮮幅員東西二千里南北四千里)"라고 되어 있으며,

명나라 정약증이 찬한 정개양잡저(鄭開陽雜著)의 권5
조선도설(朝鮮圖説)에서도
"동서는 바다에 접해 있으며
북족으로는 여직(女直)과 접해 있고
서북은 압록강에 다다르며
동서는 2천리이며, 남북은 4천리이다."라고 되어 있다.

명나라 장황(章潢)이 찬한 도서편(圖書編) 권50에도
청나라 때 간행된 흠정속문헌통고(欽定續文獻通考) 권237에도
동일하게 동서 2천리, 남북 4천리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또한 명일통지와
명나라 동월(董越)이 찬한 조선부(朝鮮賦)에도
역시 똑같이 조선의 강역은 동서 2천리, 남북4천리라 하고 있다.

그럼 위의 조건에 맞는
동서 2천리와 남북4천리는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말하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조선 이전의 고려와 삼국시대 그리고
단군조선의 강역은 위와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궁화 3천리만을 노래하고 있으며
그릇된 역사관과 강역관을 주입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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