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죽으면 관을 깊이 파묻으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였다고 한다.
9자(270㎝) 가량 깊이 파서 관을 묻으라는 당부였다.
왜 그렇게 깊이 묻어야 하느냐고 물으니
이제마는 “말 발굽 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렇다”는 대답을 하였다.
과연 해방 이후 소련군이 진주할 때 바로 그 묘의 옆길로
소련군 탱크들이 소리를 내면서 들어왔다.
이를 목격한 후인들은 “이제마가 과연 명인은 명인”이라는 이야기들을 하고는 하였다.
이를 목격한 후인들은 “이제마가 과연 명인은 명인”이라는 이야기들을 하고는 하였다.
해방 이후 함흥 일대에서 이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