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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군 종부리 양지마을

평창군 대하리 2011. 6. 2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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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O아!

이천권이다

 

너를 찾으려 평창에 3번 갔다 왔다

그러나 너를 찾을수가 없었다

 

작년 대하리에서 종부리 양지마을에

너의 어머니쪽 친척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을 못 보셨다는 너의 부모님이

양지마을에서 사셨다는 이야기더라

 

올해 5월15일

종부리 대하리에 너를 찾아서 다녀 왔다

 

30여년전 종부리 오빠집에

너를 찾으러 내가 간적이 있다

 

나는 종부리 너의 오빠 집에서

너와 백년해로 한다는 각서를 쓰고 왔었다

 

그때  나는 너를 찾으러 가는중 이었고

너는 빨랫터에서 빨래를 마치고 나오는 중에 우린 만났지

 

너는 나를 보고 따라와 하면서

종부리 오빠집에 나를 데려 갔었다

 

너를 만났던 빨랫터를 찾고 싶어서

5월에 종부리에 갔었다

 

그러나 30여년만에 찾아간 종부리는

내 기억으로 찾을수가 없었다

 

종부리 마을 입구

 

 

양지마을에서 본 마을 입구쪽 풍경

 

 

마을 입구에서 동네분들에게

30년전 빨랫터를 물어 보니

빨랫터가 여러 군데이고

한군데는 집이 들어서 있다더라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 왔다

 

앞을 못 보셨다는 너의 부모님 친척들을 찾으면

너의 소식을 알수 있을까 하다가

 

내 욕심으로 너가 잘못 될수도 있을것 같아

서럽지만 돌아서 왔다

 

작년 대하리에서

너가 악독한놈 만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너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부모 형제와 인연을 끊고 서럽게 살고 있다

 

부산 금사동 살때

용인으로 너와 도망 갔을때

그대로 살게 놔 두었더라면

너와 나는 평범하게 살고 있었을텐데....

 

너를 떠나온 후

너를 잊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었다

30년 세월이 흐르건만 자국이 남아 있단다

 

이천권 사랑의 상흔(傷痕) 

 

 

지금에 와서 어머니가 후회 하신단다

후회하면 뭘하니 이미 늦어 버렸는데

 

너가 힘들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는 30년을 너를 가슴에 품고

서럽게 살고 있다

 

부모 형제 때문에

너와 이별을 했던 내 인생

 

지금도 내 가슴에는 너가 살아있고

내 가슴속에는

부모 형제에 대한 분노를 삭이며 살고 있다

 

 

용인군 어정리에 살고 있을때

향군법으로 고발이 되서

어쩔수 없이 부산으로 내려 갔었지

 

완주군에 너가 살고 있다는걸 확인하고

부산으로 다시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있을때

너는 그 남자와 같이 와서 나를 불렀지

 

그때  너의 모습이 처음에

큰누나 얼굴로 보였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작년에야 알았다

용인군으로 너와 도망 갔을때

향군법으로 고발한 사람이

엄마와 큰누나 였단다

 

엄마와 큰누나가 나를 향군법으로 고발 한것이

결국 너와 나의 인연을 끊어 버리는

결적정 사건 이었지

 

너를 찾아 갔을때

너의 얼굴이 큰누나 얼굴로 보인 것은

바로 그 사실을 보여준 것이지

 

작년 그 사실을 알고나서

나는 부모 형제와 인연을 끊고 살고 있다

 

내가 너를 못잊고 이리 살고 있지만

공들여 낳은 이 자손을

내 조상님들이 보살펴 주리라 믿고 산다

 

언젠가는 너와 다시 만나겠지

너가 가정을 가지고 살고 있다면

그때 내가 너를 놓아 줄께 

 

돌아보면

금사동 송정바닷가 해광사 용궁사

연화리 대변 칠암리......

 

너무나 아름다웠던

너와의 사랑......

 

올 10월쯤

너를 찾아서 평창에 다시 가 보려고 한다

너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와의 사랑을 찾아

슬프지만 다시 갈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아.....

지금도 사랑하는 내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