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O아!
나 이천권이다
어제 오후에 평창에 갔다가
오늘 대불공단 숙소에 내려왔다
왕복13시간 운전했더니 조금 피곤하네 ^^
30여년전 대하리에 갈때
너와 주천가는 버스를 타고간 기억이 떠올라......
오늘 종부리를 찾아 갔었다
그러나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30여년전 종부리 오빠집에
너를 찾아 갔었지.....
너가 얘기 해준대로
종부리를 찾아가는데
약속이나 한것처럼
내가 빨래터 쪽으로 올라가고
너는 마침 빨래를 마치고
세숫대야에 빨래를 이고 나오는 중이었지
너는 나를 보고 따라와 하면서
종부리 오빠집에 나를 데려 갔었다
그날 저녁
나는 너에게
빨랫터에서 나를 만났을때 안 반가워?
하고 물어보니
너는 빨래를 던져 버리고 안고 싶었다고 했었다.....
나는 지금도 너의 그 말이 가슴에 남아서
그때의 너가 떠 오르며 내 가슴이 아파온다
그리고 종부리 너의 오빠 집에서
너와 백년해로 한다고
각서를 쓰고 왔었다.....
그 빨랫터를 찾아보고 싶어서
종부리에 갔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 왔다
마을 입구에서 사람을 만나 물어보니
옛날 빨랫터에 집이 들어서 있다고 하더라
작년 대하리에서
양지마을에 너의 친척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 갔었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너를 만난곳이
양지마을이 아닌 음지마을인것 같다
양지마을은 입구에 있고
너를 찾으러 간곳은
내 기억으로 비탈길을 올라간것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곳은 양지가 아닌 음지마을 이기 때문이다
양지마을에 가서 앞을 못 보셨다는
너의 부모님 이야기를 하고
너의 친척들을 찾을까 하다가
내 욕심으로 너에게 아픔을 줄까봐
나는 다시 돌아서 와야 했다
돌아 오는데 왜 그리 슬프냐....
너를 생각하면
어머니 큰누나가 너무 원망 스러워진다
아니 원망 보다는
가슴에 분노를 삭이며 살고 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너와의 옛날 추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끌어 올라
숨쉬기가 힘들도록 서러움의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 부모 형제와 인연을 끊고 살아가는 나....
너를 떠나온 후
잊지 않겠다고 맹세 하며
칼로 너의 이름을 새겼지
30년 세월이 지나 가는데
흔적이 남아 있단다
너에게 피해가 있을까봐
이름 끝자는 지웠다
30년을 너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세월
얼마전 목포에서
잘 본다는 보살을 찾아 간적이 있는데
왠 여자가 보인다고 하더라
내가 동그란 얼굴에 눈이 큰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보살님이 맞다고 하더라
너 이야기를 했더니
보살님이 그래서 젊은 여자가 보였구나 하더라
완주 그사람 하고는 인연이 아니다고....
지금 자식들 데리고
혼자서 힘들게 살것 같다고 하더라
나하고 다시 만날 인연은 있는데
올해 내가 운이 안 좋아
올해는 힘들겠다고 하더라
그러나 다시만날 인연이 있다고 하는것 만으로도
나는 너를 기다릴 생각이다
그러나 작년9월12일
너가 미치게 보고 싶어
부산 송정 연화리 기장 대변 칠암리를 둘러 보고 돌아 오다가
완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미O이 너가 자식 낳고 잘 살고 있다고....
너가 잘살고 있다고 하기에
너의 이름조차 쓸수 없는 나....
너를 찾고 싶어서
너와 추억이 있는 빨랫터를 찾고 싶어서
종부리를 찾아 갔었다
그러나 세월은 내 기억을 빼앗아가 가 버렸다....
음지마을에서 내려다 본 마을 입구
양지마을에서 본 음지마을 전경
양지마을을 내려 오면서
음지마을 전경
앞을 못 보셨다는 너의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
너를 찾을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의 욕심으로
너에게 피해를 줄까봐
나는 그냥 돌아서 올수밖에 없었다.....
어제 영암군 대불공단에서 대하리 까지
6시간30분 걸리더라
대하리 가니까 너의 친척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오늘 장날이라 혹시나 하고 9시에서 10시30분정도 까지
시장을 돌아 다녔다
종부교 다리에서 찍은 나의 모습이다
옛날 모습이 남아 있을 것이다
여기는 버스터미널 옆 강뚝이다
평창에 처음 찾아 갔을때
내가 장난으로 너가 말 안들으면
그냥 부산으로 간다고 장난하던 곳이다
그런데 그때 너는 눈에 눈물이 보였었다......
지금도 그때의 너의 모습이 안 잊혀지고 생각난다
상의는 흰색 털달린 옷 이었고
하의는 곤색 바지를 입고 있었지.....
너와 이곳에서 다시 장난치는 날이 돌아 올수 있을까.....
시장을 돌아 다니다
종부리에 들러서 빨랬터를 찾다가
찾지 못하고 대하리 들러서
다시 돌아 왔다
그러나 대하리 친척집에 들르지는 않았다
내가 찾아 가는걸 불편해 하는 눈치더라....
작년9월 완규에게서 전화가 왔을때도
완규가 대하리에 가지 말라고 하더라
가지 않겠다고 약속 했으니 지켜야지.....
앞으로 평창에 가더라도
대하리 구경만 할뿐
집에 들르지는 않을 것이다
돌아 오면서
나는 어머니와 큰누나를 원망 하면서 돌아왔다
금사동 살때
경기도 용인군 어정리 살때.....
그때 그대로 살게 그냥 두었더라면....
경기도 용인군 어정리로 너와 내가 도망 갔을때
향토예비군법으로 나를 고발한 사람이
큰누나 였단다
용인에서 어쩔수 없이
부산으로 다시 내려오고
얼마후 너는 내 곁을 떠났지
결국 큰누나가 나를 고발함으로서
너와 나 사이에 결정타를 먹인 셈이지....
미O아!
너와 나의 인연을 이야기 해 볼까?
금사중학교 밑에 살때
내가 괴로워 수면제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다
너를 만났지....
너를 보자 나는 서러움에 울었지
그러자 너는 아프냐고 물으며
내 팔을 부축해 주었다
아래 사진이 그 집이다
그때도 우리는 약속이나 한것 처럼
그시간에 우리는 만났었다...
다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수 있다면....
내 목숨을 너에게 맡기고 싶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나
너를 못잊어 30년을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가는 나......
종부리에 너를 찾아 갈때도
약속이나 한것처럼
나는 너를 찾아 올라가는 중 이었고
너는 빨래를 마치고 나오는 중에 서로 만났지
경기도 용인으로 도망갈려고
수원에 내친구 강석근이 집에서
만나기로 했을때
길이 두갈래 길인데
우린 약속이나 한것처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길로
나는 나오고 너는 오다가
우린 만났었지
神이 인정한 사이가 아니면
그렇게 만날수 없을 것이다
너가 어떻게 살고 있던
나는 그 모든것 내가 감당하고 싶다....
너를 다시 만나
너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
그 옛날 너에게 내가 한 약속
너는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그 약속을 지금이라도 지키고 싶다
너가 불구자가 되었을 지라도
너가 바보가 되었을 지라도
그 모든것 내가 감당하고 싶다......
그 옛날 너가 나를 안아 주었듯이
이제 내 가슴에 너를 안고
너를 편히 쉬게 하고 싶다
나 때문에 힘들었을 30년 세월
남은 너의 인생을
내가 책임질수 있다면
내 모든것을 너에게 맡기고 싶다....
30년을 너를 못잊고
가슴에 품고 살아온 세월
나 때문에 너는 힘들게 살고 있을 것이고
너 때문에 나도 힘들게 살고 있다.....
미O아!
우리 그만 만나서 아픔을 잊고 살수 없을까.....
나는 너에게 기대고
너는 나에게 기대면서
젊은날의 사랑을 이야기 하며
그렇게 살고 싶다....
장남이라서....
독살스런 부모 형제들 때문에
너와 이별을 했던 내 인생
그래서 지금도 너를 못잊어
부모 형제와 인연을 끊고 살아가는 내 인생......
기다릴께......
그냥 기다릴께....
너와 다시 만날수 있다는
기다림을 가지고
그냥 기다리며 살고 있을께.....
서러운 내 인생 이지만
너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힘들지만 살아가고 있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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