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東學)과 보천교(普天敎)는
둘다 연원제(淵源制) 방식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입도한 사람을 입도시킨 사람 아래에 두는 방식,
이 연원제(淵源制) 방식은 솔직히 피라미드 방식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으나
교세(敎勢)를 확장 시키는데는 큰 이점이 있습니다.
이 당시의 연원제 방식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연원제 방식과
동일한 것인지 아니면 조금 다른 것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학자들의 기록을 보면 당시의 연원제도 역시 입도한 사람을
입도시킨 사람의 아래에 두는 방식을 취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 연원제는 증산계열에서도 사용이 되었으며,
지금도 증산계열의 큰 종단이라 할수 있는 2개의 종단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연히 아니면 어떤 인연으로 도(道)를 알려 주었다고
그 사람을 평생 스승처럼 모셔야 할까요?
자신에게 도(道)를 알려준 사람의 수준이 형편 없을 수도 있으며
서로 성격이 맞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이 연원이란 것이 평생을 가야 할까요?
역사가 깊은 증산계열의 한 종단은 상당히 다른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 종단은 누가 어떤 사람을 데리고 와도
도(道)를 전해주는 사람은 그 종단에서 스승이라 부를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데리고 온 사람은 그냥 인도자 입니다.
인간적인 품성(品性)과 경륜, 지식(知識)이 있는 사람에게 도(道)를 받게 하는 방식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래의 방법이 훨씬 합리적인 방법이며,
그 단체를 위해서도 입도한 개인을 위해서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나 이 글을 보시는 분들중 상당수는 포교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포교를 하면서 도(道)를 전하였다고 할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런 도(道)가 있다고 알려주는 사람의 역활을 한것일까요?
일던 저 자신부터 말히면 제가 도(道)를 이루지 못했는데
어찌 도(道)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좋은 도(道)가 있다고 알려주는 인도자의 역활이 최대치 입니다,
아니면 본인 스스로 방문 하셨는데
그냥 입도절차나 기타 필요한 사항을 알려주는 안내원 역활에 불과 합니다,
지금의 연원제를 이용하여 입도한 사람을
입도시킨 사람의 지위 아래 두는 방식은 포교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방식으로 보여집니다.
특정 종단에서 탈교자 분들에게 누구 덕에 증산미륵세존님을 알게 되었고,
누구 덕(德)에 신앙 생활을 할수 있었느냐 라고 하며
연원제를 이용하여 탈교하신 분들을 도덕적으로 공박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분들과 그 단체는 도를 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이런 도가 있다 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물론 그 공덕은 분명히 있으나 이것 하나로 평생 그 사람을 스승으로 받들어 모시고,
그 단체에 복종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도를 이루지 못했는데 누구에게 도를 전한다는 말인가요?
경전(經典)를 보면 연원을 바르게 하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연원을 바르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제가 삼덕교(三德敎)에 대하여 아는 것이 하나도 없고
잘못하면 삼덕교(三德敎) 도현님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나 삼덕교(三德敎)의 예를 들어 봅니다.
삼덕교(三德敎)를 창교하신 남송(南松) 허욱(許昱) 선생님께서는
친자종도(親炙從徒)이신 이치복(李致福) 성도님께 도(道)를 받으셨습니다.
참고로 삼덕교(三德敎)에 전해지는 이치복 성도님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있습니다.
기유(己酉1909)년 6월 24일 화천(化天)하시기 전에
종도(從徒)들을 한 사람씩 방으로 불러들여 말씀을 하셨다.
이 때 차경석(車京石)을 불러 말씀하신 뒤에
이치복을 부르시므로 방에 들어가 모시니 당신께서 벽을 향하여 누우사
「서전서문만독(書傳序文萬讀) 치복(致福)」’이라 쓴 왼손바닥을 보이실 뿐
아무런 말씀을 안 하시고 손을 흔드시므로 나왔다.
대성(大聖)의 성훈(聖訓)에 서전서문(書傳序文)이 좋다는 기록이 있지만
서전서문(書傳序文)을 만독(萬讀)하라는 말씀을 전한 종도는
이치복(李致福) 뿐이었다 한다. (三德敎史 157~159쪽)
남송(南松) 허욱(許昱) 선생님께서는
이치복 성도님에게 도(道)를 받으신 후 일심으로 공부하셔서
결국 신교(神敎)를 받으시어 신도문(神道門)을 여시게 됩니다 .
그런데 이치복 종도님께서 남송(南松) 허욱(許昱) 선생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허령(虛靈)에 걸렸다고 보시고 떠나 버리셨습니다.
요즘 보는 일반적인 사회상이면 여기서 연원이 끝이 납니다,
그런데 남송(南松) 허욱(許昱) 선생님께서는 전혀 다르게 연원을 바르게 하셨습니다.
계해(癸亥 1923) 3월 15에 남송 허욱 선생님께서는
이치복 성도님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립니다.
머리가 땅에 닿도록 거듭 절하면서
그간의 죄스러움에 대하여 용서를 빌어 스승님께 문안하옵니다
기체후(기력과 체력) 크게 평안하심을 삼가바라온데
예의가 없고 의리가 없게 된 황당한 소자 허 욱(許 昱)은
보성에서 섬진강을 건너가 하동에서 3년을 경과함에
삼동도방 학생들과 더불어 마침내 삼덕(三德)을 얻었음 이온데,
이것은 곧 증산대성사 문명 중에
「천지지주장(天地之主張) 사물지수창(事物之首倡) 음양지발각(陰陽之發覺)」이라하시니,
곧 육합 구궁으로 발각된 「인사각지(人事覺之)」라 하겠습니다.
소자는 신명전에 서약한 바를 저버리지 않고 무극대도를 전해주신
연원의 은덕에 대하여 월암(김형국) 어른과 석성(이치복) 선생을 늘 곁에 함께하고 있음에,
한결같게 공경함은 옆 사람으로 하여금 보는 바이며
또한 신명(神明)으로 사정을 밝게 비추어 보살피심이라 하겠습니다.
어찌 이와 같이 부끄러워함으로 흡족하다 하겠습니까!
남음은 직접 말씀으로 전달함이 있으므로
다 갖추지 못하옵고 삼가 말씀을 사뢰어 올리나이다.
계해(1923)년 3월 15일 도문의 소자 허 욱(許 昱) 재배(再拜)하나이다
(南松先生實記 23쪽, 生化正經 32쪽, 三德敎史 143쪽)
결국 이치복 성도님은 남송 허욱 선생님깨서 주최하신
7일간의 공부에 참관 하시고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치복과 채사윤(봉묵) 두 분은 7일간의 수련을 본 후에 말하기를
「남송(南松)이 이같이 큰 공부가 있는 것을 전일에 어찌 알았으리오」하고
남쪽 하늘을 향하여 축하하였다.
(南松先生實記 23∼24쪽, 生化正經 32~34쪽, 三德敎史 143~144쪽)
결국 이치복 선생님깨서 세우신 제화교는
남송 허욱 선생님께서 세우신 삼덕교에 흡수 통합되었습니다.
연원을 바로 세우는 것은 자신에게 진리를 전해준 사람에게 단순히 순종하는 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위의 사례에서 볼수 있듯이(이치복 성도님께서 잘못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 부탁 드립니다,)
자신의 도를 완성하고 자신에게 도를 전해준 사람이 못알아 보면
예를 갖추어 자신에게 도를 전해준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연원을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참고로 이 연원제라는 것을 은근히 지원하는 성구가 대두목이 도통준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저는 이에 반하여 경전에는 없지만
한 때 김제지역 여러 종단에서 언급이 되었고
중소 종단의 자체 경전에는 명백히 남아있는 용화회상.
이 용회회상때 증산미륵세존님깨서 감화통으로 한 번에 도통을 준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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