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도 남아 있는 고구려의 흔적들-북경의 '고려영'과 '한촌'의 지명>
하북성의 한성(韓城)과 나중에 쌓은 3곳의 신성(新城)이
신성자(新城子)와 신성의 지명으로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여러 차례에 걸쳐 고구려를 침공했던 수나라가
고구려 26대 영양왕(영양무원호태열제) 23년에 다시 고구려 침공을 앞두고
수양제(隨陽帝)가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고구려의 무리가 혼미불공하여 발해와 갈석 사이에 군중을 모아
요와 예맥의 땅을 잠식하니…
여기서 [발해]는 하북성 남쪽의 바다이며, [갈석]은 갈석산으로,
이 지역이 고구려의 핵심 요충지임을 말하고 있다
용도성은 번한의 성터로 후에 ‘연개소문’이 이름을 고쳐
고려진高麗鎭】이라고 하였고, 현 北京의 북쪽이다
<태백일사〉고려진(高麗鎭)은 안정문安定門 밖 60리 되는 곳에 있다.
안정문은 북경 도성의 동북쪽에 있는 성문으로, 지금도 같은 명칭이다.
현재의 지도에서 고려영(高麗營)라고 표기한 곳이 바로 옛 용도성이다.
고구려 진영이라는 뜻이며
중국 지도에서 이곳이 고구려 강역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더 있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誌〉조선의 성이 영평부永平府 경내에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영평부는 〈명나라 때 북경을 말한다〉
또 있다
요서에 쌓은 10성 중에 한성(韓城)은 현재 하북성에 그 지명 그대로 있으며
신성(新城)과 신성자(新城子)라는 지명 또한
훗날 고구려가 3곳에 쌓은 新城의 이름으로, 오늘날 그 지명 그대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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